OWN 뉴스 · 2026.11.05 12:19

“1층 할머니께 저녁 반찬 챙겨 줬는데..” 49재 끝난 날 할머니 아들이 내민 공책에 결단했다

이웃끼리 건네는 정은 대개 셈 없이 시작됩니다. 남은 반찬 한 그릇, 안부 한마디가 쌓이다 보면 가족 못지않은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건넨 정을 누군가는 전혀 다른 장부에 적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 버스터미널 뒤 골목에서 18년째 작은 김밥집을 합니다. 새벽 다섯 시에 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고 저녁 여덟 시 반에 셔터를 내립니다. 공장에서 정년퇴직한 남편이 가게 배달을 거들고, 외동딸은 시집가 다른 도시에 삽니다.

정 씨 부부는 오래된 3층짜리 다세대주택 2층에 세 들어 삽니다. 1층에는 여든을 넘긴 할머니가 혼자 사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아들 하나를 키우셨는데, 그 아들 오 씨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살며 한 달에 한두 번 들렀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눈 건 6년 전 겨울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계단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고 계셨습니다. 정 씨가 빗자루를 받아 들자 할머니는 “2층 새댁, 발걸음이 참 부지런하네” 하며 웃으셨습니다. 예순이 다 된 사람에게 새댁이라니, 정 씨도 따라 웃었습니다.

한번은 정 씨가 미안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할머니, 저 새벽마다 나가는 소리 시끄럽지요?”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아이고, 무슨. 위에서 발소리 나면 사람 사는 소리 같아서 좋아. 혼자 있으면 그 소리가 제일 반갑다.”

반찬을 챙기기 시작한 건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저녁에 할머니 집 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보니, 할머니가 맨밥에 물을 부어 김치 한 가지로 저녁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정 씨는 2층으로 올라가 시금치나물과 어묵볶음을 담아 다시 내려갔습니다.

“할머니, 가게에서 남은 거예요. 버리기 아까워서요.” 할머니는 “남은 걸 왜 이리 정갈하게 담아 왔노” 하며 반찬통을 받으셨습니다. 사실 정 씨는 그날부터 재료를 조금씩 더 장만했습니다. 우엉조림, 계란말이처럼 할머니가 무르게 씹을 수 있는 것으로 골랐습니다.

그렇게 5년 동안 정 씨는 가게 문을 닫고 오는 길에 반찬 두세 가지를 들고 1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빈 통을 깨끗이 씻어 문고리에 걸어 두셨고, 뚜껑에는 꼭 쪽지를 붙이셨습니다. 늦게 글을 깨치신 할머니의 쪽지에는 크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잘 먹엇소 고맙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 씨는 주말에 내려오면 그 반찬으로 밥을 먹고 갔습니다. 어느 날은 계단에서 정 씨를 붙잡고 “아주머니, 장조림 좀 넉넉히 해 주시면 제가 올라갈 때 가져가겠습니다” 하기도 했습니다. 서운했지만 정 씨는 할머니 얼굴을 봐서 두 통을 싸 주었습니다. 그 뒤로 반찬통은 하나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올여름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정 씨는 가게 쉬는 날마다 죽을 쑤어 병실을 찾았습니다. 할머니는 정 씨 손을 잡고 “집에 가서 위에서 걷는 소리 듣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8월 말, 병실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49재가 끝난 10월 중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오 씨가 유품을 정리한다며 정 씨를 1층으로 불렀습니다. 집 안에는 상자가 쌓여 있었고, 싱크대 위에는 낯익은 반찬통 몇 개가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었습니다.

오 씨는 앉으라는 말도 없이 파란 표지의 공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어머니 방에서 나왔습니다. 한번 보시죠.” 공책에는 날짜별로 [밤 9시 쿵쿵], [새벽 발소리, 잠 깸], [밤 9시 15분 계단 소음]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위층 소리에 얼마나 시달리셨는지 이제 알았습니다. 변호사 상담도 받았어요. 층간소음 위로금으로 1,000만 원 주시면 조용히 끝내겠습니다.” 정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공책을 든 손이 떨렸습니다.

그런데 공책을 넘기던 정 씨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습니다. 글씨가 너무 반듯했습니다. 볼펜으로 또박또박 쓴 글씨는 5년 동안 반찬통 뚜껑에서 본 할머니 글씨와 전혀 달랐습니다. 받침 하나 틀린 데가 없었습니다.

날짜도 이상했습니다. [밤 9시 쿵쿵]은 정 씨가 반찬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던 시간이었고, [새벽 발소리]는 장 보러 나가던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할머니가 입원해 계셨던 7월과 8월에도 기록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1층 집은 비어 있었습니다.

정 씨는 공책을 덮었습니다. “이거 할머니 글씨 아니지요. 할머니 글씨는 제가 5년 동안 반찬통 뚜껑에서 매일 봤습니다. 할머니 병원에 계실 때 이 집에서 누가 소리를 들었습니까?” 오 씨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어머니가 불러 주시는 걸 제가 받아 적은 겁니다.”

“할머니는 그 소리가 사람 사는 소리라 좋다고 하셨어요. 주말마다 그 반찬으로 밥 드시면서, 뒤로는 이걸 적고 계셨던 거네요.” 오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정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위로금은 한 푼도 못 드립니다. 소송하시려면 하세요. 저도 가게 장부랑 할머니 쪽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대신 제 반찬통은 돌려주세요. 그동안 가져가신 것까지 전부요.” 오 씨는 한참 머뭇거리다 차 트렁크에서 반찬통 열한 개를 꺼내 왔습니다.

그날 저녁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할머니 보고 한 일이니 그걸로 됐다” 하며 정 씨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정 씨는 오 씨의 전화번호를 지웠습니다. 그 뒤로 소송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정 씨는 쪽지가 미처 떨어지지 않은 반찬통 하나만 가게 선반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이솝 우화 속 농부는 눈밭에 얼어 있던 뱀을 품에 안아 녹여 주었다가, 깨어난 뱀에게 물리고 맙니다. 정은 베푸는 사람의 마음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받는 쪽이 그 정을 어디에 적고 있는지 우리는 끝내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을 거둘 일은 아닙니다. 다만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작은 쪽지 한 장, 장부 한 줄이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세요.

올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 1층에 젊은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돌아온 정 씨는 평소처럼 계단을 천천히 올랐습니다. 2층 창가에 서니 골목 가로등 아래로 첫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정 씨는 1층 창에 켜진 불빛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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