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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없앴으니 기일도 조용히 넘기면 그만일까. 그렇게 생각했다가 첫해에 형제 사이가 서먹해지는 집이 적지 않다. 상을 차리지 않으니 몸은 편하다. 그런데 달력에 적힌 그날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다. 누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가고, 누구는 혼자 서운함을 삭인다.
제사를 그만두는 결정보다 어려운 것은 그 뒤에 처음 맞는 기일이다. 형식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정리를 잘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조상을 잊었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첫 기일을 섭섭함 없이 보낸 집안들이 공통으로 챙긴 것을 정리했다.
3위. 형제가 모이는 짧은 식사 자리
제사가 없어지면 형제가 한자리에 모일 핑계도 함께 사라진다. 맏이가 “올해는 각자 집에서 조용히 생각들 하자”고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동생들 속은 다르다. 편해서 좋다는 마음 한편에 ‘이제 우리 집은 이렇게 흩어지는구나’ 하는 허전함이 남는다.
많은 집에서 기일은 상을 차리는 날이기도 했지만 형제가 얼굴을 보는 날이기도 했다. 상차림은 없애도 모이는 일까지 없앨 필요는 없다. 기일 전후 주말 저녁에 두어 시간 밥 한 끼 먹는 정도면 충분하다. 고인이 즐기던 음식을 한두 가지 놓고 옛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이 새로운 추모가 된다.
2위. 성묘·추모 일정 미리 정해 단톡방에 올리기
기일 사흘 전쯤에야 누군가 단톡방에 “이번에 산소는 다들 가는 거지?”라고 올리면 대답이 엇갈린다. 이미 다른 약속을 잡은 사람은 미안해진다. 그날을 비워 둔 사람은 ‘나만 신경 쓰고 있었나’ 싶어 서운하다.
제사를 지낼 때는 날짜와 할 일이 저절로 정해졌다. 제사를 없앤 뒤에는 누군가 정해 주지 않으면 흐지부지되기 쉽다. 한 달쯤 앞서 성묘 날짜, 모이는 장소, 식사 여부를 한 번에 정리해 올려 두는 편이 무난하다. 못 오는 사람은 편한 날 따로 다녀와도 된다는 말을 함께 적어 두면 부담도 덜하다.
1위. 친척 어른들께 바뀐 방식 직접 전화로 알리기
가장 탈이 나기 쉬운 곳은 집안 어른 쪽이다. 해마다 기일이면 찾아오던 작은아버지가 뒤늦게 소식을 듣는다. 그러고는 “그래, 너희가 알아서 했겠지” 하고 전화를 끊는다. 말은 담담해도 속으로는 ‘나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구나’ 하는 서운함이 오래 남는다.
어른들은 제사를 없앤 일보다 그 소식을 남에게 전해 들은 일을 더 섭섭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자나 단톡방 공지로 대신하기보다 맏이나 제사를 주관하던 사람이 직접 전화를 드리는 편이 무난하다. 왜 이렇게 정했는지, 기일에는 어떻게 모이는지 차분히 말씀드린다. 여기에 “그날 시간 되시면 식사 자리에 오세요”라는 한마디를 덧붙이면 어른도 밀려났다고 느끼지 않는다.
제사를 그만둔다고 고인을 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첫해에는 모두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는지 서로 지켜본다. 밥 한 끼, 미리 정한 날짜, 전화 한 통이면 된다. 거창한 형식 대신 이 세 가지만 챙겨도 첫 기일은 서운함 대신 새로운 방식의 시작으로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