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6:54

“동생 보증 빚 7000만원 갚아줬는데..” 아버지 제삿날 손자가 펼친 신문에서 벌어진 일

형제 사이에 돈이 오가면 셈이 흐려집니다. 남이라면 따지고 물을 일도 핏줄이라는 이유로 덮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덮어 둔 일은 대개 가장 뜻밖의 자리에서 다시 드러납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경기도의 한 소도시에서 서른두 해째 개인택시를 몹니다. 새벽 다섯 시면 차에 시동을 걸고, 해가 진 뒤에야 기사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두었고, 둘 다 결혼해 따로 삽니다.

황 씨는 4남매의 맏이입니다.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고, 열 살 터울의 막냇동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공사장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막내는 겨우 열 살이었습니다. 그날부터 황 씨는 형이면서 아버지 노릇까지 했습니다.

막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날, 황 씨는 회사 택시 교대 시간을 바꿔 가며 입학식에 갔습니다. 헐렁한 교복 소매를 접어 주며 “형이 있으니까 기죽지 마라” 했던 일을 막내는 오래도록 이야기했습니다. 막내 결혼식 때는 예식장 비용을 황 씨가 치렀고, 함을 지고 가는 일도 직접 맡았습니다.

15년 전 봄, 막내가 황 씨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무렵 막내는 공구와 건축 자재를 납품하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형님, 은행에서 운영자금을 빌리려는데 보증인이 있어야 한답니다. 석 달이면 거래처 대금이 들어오니 형님한테 피해 갈 일은 절대 없어요.”

아내는 부엌에서 고개를 저었지만 황 씨는 도장을 꺼냈습니다. “네가 형한테 거짓말할 놈이냐.”

반년 뒤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부도가 났어요. 거래처가 줄줄이 넘어가서 손쓸 방법이 없어요.” 얼마 뒤 은행에서 보증인에게 대출금 7000만 원을 갚으라는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황 씨 부부는 밤새 통장을 펼쳐 놓고 셈을 했습니다. 딸 결혼 자금으로 붓던 적금을 깨고, 택시 수입에서 다달이 떼어 둔 노후 자금까지 털었지만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스무 해 넘게 산 서른두 평 아파트를 팔고, 시장 뒤편의 낡은 스무 평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이삿날 아내는 두고 온 베란다 화분들을 자꾸 돌아보았습니다. 황 씨는 “내 동생 일이니 내가 두 배로 뛰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황 씨는 쉬는 날에도 핸들을 놓지 않았습니다.

막내는 부도 뒤로 지방에서 남의 일을 거든다며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기일만큼은 꼬박꼬박 큰형 집에 왔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고개를 숙이고 절만 하고 가는 막내를 보며 황 씨는 오히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상한 것은 둘째와 여동생이었습니다. 황 씨가 “막내 요즘 어떻게 사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둘 다 “그냥저냥 산대요” 하며 말을 돌렸습니다. 황 씨는 형제들이 막내 체면을 지켜 주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몇 해가 지나면서 막내 얼굴에 조금씩 살이 붙었습니다. 아내가 “도련님 사정이 좀 나아진 모양”이라고 해도 황 씨는 “겨우 일어서는 놈한테 무슨 돈 얘기냐”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7000만 원은 그렇게 15년 동안 한 번도 형제들 입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올해 아버지 기일은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었습니다. 좁은 거실에 제사상을 펴자 형제들과 제수씨들, 조카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았습니다. 막내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3학년 손자를 데려왔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음복을 하는데 손자가 가방에서 큰 도화지 한 장을 꺼냈습니다. “큰할아버지, 이거 학교 숙제로 만든 우리 가족 신문이에요. 선생님이 칭찬해 주셨어요.” 아이는 신문을 제사상 옆에 활짝 펼쳤습니다.

맨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 가족 신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가운데에는 5층짜리 상가 건물 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 아래 연필로 쓴 기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15년 전에 이 건물을 샀습니다. 1층은 빵집, 2층은 학원입니다. 우리 가족은 꼭대기 층에 삽니다.’

사진 옆에는 ‘2011년에 삼’이라는 글씨가 덧붙어 있었습니다. 황 씨의 눈이 그 숫자에서 멈췄습니다. 2011년은 황 씨가 아파트를 팔아 동생 빚을 갚던 바로 그해였습니다.

거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막내는 도화지를 급히 접으려다 손을 멈췄습니다. 황 씨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막내야, 이 건물 네 거냐.”

막내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제수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 명의예요, 아주버님. 그때 다 넘어갈 판이라 남은 거라도 지키려고 그랬어요.” 부도 직전에 재산을 아내 앞으로 돌려 상가를 사 두고, 형에게는 빈털터리가 된 척했던 것입니다.

황 씨의 아내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다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조카들까지 숨을 죽인 가운데 여동생이 먼저 언성을 높였습니다. “너희가 사람이야? 큰오빠는 집까지 팔았어!”

제수씨가 여동생을 똑바로 보며 받아쳤습니다. “형님도 다 알면서 모른 척한 거 아니에요? 형님네 옷가게, 몇 해 동안 우리 건물 1층에서 월세 반값에 하셨잖아요. 둘째 아주버님도 집 살 때 우리한테 돈 빌려 가셨고요.”

여동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둘째는 고개를 돌려 창밖만 보았습니다. 막내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돌리던 동생들의 얼굴이 황 씨의 머릿속을 스쳐 갔습니다. 이 방에서 모르는 사람은 황 씨 부부뿐이었습니다.

황 씨는 한참 동안 아버지 영정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겁먹은 얼굴로 도화지를 쥐고 있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신문 참 잘 만들었다. 너는 아무 잘못 없다.”

황 씨는 일어나 향을 하나 더 피웠습니다. “아버지, 제가 맏이 노릇을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7000만 원은 달라고 안 하마. 도장 찍은 건 나였으니까. 대신 내년부터 아버지 제사는 우리 내외끼리 지낸다. 너희는 각자 집에서 절해라.”

막내가 무릎을 꿇고 “형님, 갚을게요” 했지만 황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잃은 건 돈이 아니다.” 그날 밤 형제들은 하나둘 말없이 신발을 신었습니다.

며칠 뒤 딸이 찾아와 알아본 것을 전했습니다. 보증인이 대신 갚은 돈은 원래 돌려받을 권리가 있지만, 세월이 너무 흘러 지금은 법으로 다투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황 씨는 웃으며 고맙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 이름으로 작은 적금 통장을 하나 새로 만들었습니다.

가족이니까 믿는 것과 가족이니까 묻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보증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큰돈을 대신 갚기 전에 한 번쯤은 사정을 보여 달라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정을 끊는 일이 아니라 정을 오래 지키는 일입니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한 사람만 모르게 한 침묵은 쉽게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맏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짐을 혼자 지고 있다면, 이제는 내려놓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세요.

첫서리가 내린 늦가을 새벽, 황 씨는 여느 때처럼 택시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조수석에는 아내가 싸 준 보온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강변 도로의 가로등이 하나둘 꺼지는 동안 황 씨는 빈차 등을 켠 채 천천히 첫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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