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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벼랑 끝에 서면 부모는 앞뒤를 재지 않습니다. 평생 붙들고 살던 밥줄도 내려놓고 손을 내밉니다. 그런데 돈을 건넨 뒤 자식의 연락이 뜸해지면, 부모 마음에는 말 못 할 서운함이 쌓이기도 합니다.
충청도 강변 도시에 사는 이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서른 해 동안 개인택시를 몰았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차를 닦아 나가고 밤 열 시가 넘어야 들어왔습니다. 아내는 시장 골목 반찬가게에서 일하며 살림을 꾸렸고, 부부에게는 외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택시를 좋아했습니다. 쉬는 날이면 조수석에 앉아 미터기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린 ‘우리 아빠 택시’ 그림을 이 씨는 늘 햇빛 가리개 안쪽에 꽂고 다녔습니다.
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던 날, 이 씨는 하루 영업을 접고 아들을 기숙사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휴게소에서 우동을 사 주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평생 남 태우고 다녔는데, 오늘 내 아들 태우니 제일 기분 좋다.”
4년 전 봄,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에 매달리던 아들이 빚에 몰려 원룸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씨가 올라가 문을 두드리자 한참 만에 문이 열렸습니다. 수척해진 아들이 바닥만 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7000만원이에요. 독촉 전화 때문에 휴대전화를 못 켜요.”
모아 둔 돈은 몇백만 원뿐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서른 해를 함께한 개인택시 면허 하나였습니다. 동료 기사 박 씨가 말렸습니다. “형님, 그거 팔면 밥줄이 끊겨요.” 이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식이 숨을 못 쉬는데 밥줄이 다 무슨 소용이오.”
면허를 넘기고 받은 7000만원은 고스란히 아들 빚을 갚는 데 들어갔습니다. 이 씨는 그림 한 장만 지갑에 넣어 챙기고, 예순의 나이에 법인택시 회사에 들어가 다시 핸들을 잡았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 교대 근무에 무릎이 시큰거리는 밤이면 아내가 파스를 붙여 주었습니다.
빚을 정리한 뒤 아들의 연락은 점점 뜸해졌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오던 전화가 석 달에 한 번이 되었고, 명절에도 “일이 있어서 못 내려가요” 하는 문자만 왔습니다. 이 씨는 아내 앞에서 태연한 척했습니다. “잘 살면 됐지.” 그러나 손님 없는 새벽에 지갑 속 그림을 꺼내 볼 때면 목이 메었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올해 설날 아침, 밤새 내린 눈에 골목이 하얗게 덮였습니다. 오후 교대를 나가려고 작업복을 입고 대문을 연 이 씨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대문 앞에 처음 보는 하얀 택시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지붕에는 개인택시 표시등이, 앞뒤에는 노란 번호판이 달려 있었습니다.
“누가 남의 집 앞에 차를 대 놨나.” 중얼거리며 다가가자 와이퍼에 열쇠 꾸러미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열쇠고리에는 눈에 젖지 않게 비닐로 몇 겹 싼 쪽지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펼쳐 보니 낯익은 아들 글씨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밥줄 돌려드립니다. 아버지 앞으로 넘기기로 하고 값은 다 치렀어요. 관청 인가는 본인이 직접 받으셔야 해서 서류는 조수석에 챙겨 두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이 씨는 쪽지를 든 채 눈 쌓인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그때 골목 모퉁이에서 아들이 걸어 나왔습니다. 4년 만에 보는 아들은 얼굴이 검게 그을렸고, 손등에는 상자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차가운 데 앉아 계시면 안 돼요.” 이 씨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너, 이게 무슨 돈이냐. 또 빚낸 거 아니냐.” 아들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번엔 한 푼도 안 빌렸어요.”
아들은 그 자리에서 지난 4년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갚아 준 돈 말고도 카드값과 친구들에게 빌린 돈이 따로 있었다고 했습니다. 새벽에는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를 하고, 낮과 저녁에는 오토바이로 배달을 했습니다. 반지하 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빚을 하나씩 지워 나갔습니다.
“다 갚고 나서도 번 돈은 한 푼도 안 썼어요. 박 씨 아저씨한테 몰래 부탁해서 면허 나온 데를 알아봤고요.” 이 씨는 그제야 지난가을 박 씨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럼 왜 연락을 안 했냐. 네 엄마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들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다 갚기 전에는 아버지 얼굴 볼 낯이 없었어요. 법인택시 다시 타신다는 얘기 듣고는 전화기만 들면 목이 막혔어요.”
어느새 대문 밖으로 나온 아내가 앞치마 바람으로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이 씨는 지갑에서 낡은 그림을 꺼내 새 차 햇빛 가리개 안쪽에 꽂았습니다. 아들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첫 손님은 저랑 엄마예요. 할아버지 산소부터 가요.”
그날 이 씨는 미터기를 켜지 않고 눈 덮인 길을 천천히 달렸습니다. 성묘를 마친 세 식구는 시장 골목 국밥집에서 떡국 세 그릇을 시켰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그릇에 고기를 덜어 주었습니다.
부모가 건넨 돈은 돌려받으려고 준 돈이 아닙니다. 그러나 받은 자식은 그 무게를 평생 안고 삽니다. 연락이 없다고 마음까지 멀어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자식은 부끄러움에 숨어 갚을 날을 세며 묵묵히 버팁니다.
자식이 멀게 느껴질 때 서운함보다 믿음을 먼저 꺼내 보세요. 부모가 내어 준 밥줄은 언젠가 자식의 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올봄 이 씨는 새 택시에 아내를 태우고 강변 둑길로 나갔습니다. 둑을 따라 벚꽃이 하얗게 흐드러졌고, 강물 위로 꽃잎이 흩날렸습니다. 두 사람은 차를 세워 두고 해가 질 때까지 꽃길을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