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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오래 아프면 형제 사이에도 금이 갑니다. 누군가는 곁에서 밤을 새우고, 누군가는 바쁘다는 말로 발길을 끊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떠난 뒤 남은 것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동안 묻어 두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서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경기도의 한 작은 도시, 오래된 상가 골목에서 28년째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버스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뒤 세탁물 배달을 거들고, 외아들은 결혼해 다른 도시에서 삽니다.
서 씨는 3남매 가운데 둘째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시장에서 떡 장사를 하며 3남매를 키웠습니다. 언니와 서 씨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막내 남동생만 대학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는 공부시켜야 한다”며 새벽 세 시면 떡시루에 불을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서 씨 세탁소에 자주 들렀습니다. 손님이 맡긴 와이셔츠에서 떨어진 단추를 말없이 달아 놓고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너는 손은 빠른데 꼼꼼하질 못해.” 그렇게 핀잔을 주고는 가게 구석 의자에 앉아 다리미에서 김 오르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7년 전 봄, 어머니가 같은 반찬을 사흘 내리 사 들고 오셨습니다. 병원에서 치매 진단이 나왔습니다. 3남매가 어머니 아파트에 모였습니다. 남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요양원 알아보자. 다들 일하는데 누가 모셔.” 언니는 “나는 시어머니도 계시고 형편이 안 된다”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서 씨는 어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어머니는 낯선 사람 보듯 자식들 얼굴을 번갈아 보며 “집에 가야 하는데” 하는 말만 되뇌었습니다. “내가 모실게. 엄마는 이 집에서 살던 대로 살게 하자.” 남동생은 “누나 고생하는 거 알아. 나중에 엄마 일은 다 같이 정리하자”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서 씨의 세탁소는 반쯤 문을 닫았습니다. 오전에만 셔터를 올리고 오후에는 ‘배달 중’이라는 팻말을 걸었습니다. 단골들은 하나둘 큰길가 세탁소로 옮겨 갔습니다. 수입은 반으로 줄었고, 기저귀와 약값, 주간보호센터 비용을 대느라 아들 결혼 때 쓰고 남은 적금까지 깼습니다.
담당 의사는 어머니 상태를 매일 적어 두라고 했습니다. 서 씨는 문방구에서 산 대학 노트에 날짜를 쓰고 그날 일을 적었습니다. 식사를 몇 숟가락 드셨는지, 밤에 몇 번 깨셨는지, 누구를 알아보셨는지. 그렇게 쓴 노트가 7년 동안 열한 권이 되었습니다.
언니는 그 7년 동안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전화도 명절에나 한 통 오는 게 전부였습니다. 남동생은 설과 추석에 잠깐 들러 과일 상자를 놓고 갔습니다. 서 씨는 서운했지만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들 사는 게 바쁘겠거니 했습니다.
지난여름, 어머니는 서 씨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아홉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서류를 떼어 보던 서 씨는 어머니 아파트가 4년 전 남동생 앞으로 증여 등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이 떨렸지만 일단 참았습니다. 남동생이 어머니 예금도 남았으니 법무사 사무실에서 다 같이 정리하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고 석 달 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3남매는 시청 앞 건물 3층에 있는 법무사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남동생 옆에는 올케가 앉았고, 언니는 우산을 접으며 서 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서 씨는 무릎 위에 낡은 천 가방 하나를 올려놓았습니다.
남동생이 서류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누나, 이거 봐. 엄마가 살아계실 때 나한테 집 주신 거야. 엄마 도장도 다 찍혀 있어.” 증여계약서였습니다. 증여자 칸에는 어머니 이름과 빨간 도장이 있었고, 그 아래 날짜는 4년 전 10월 17일이었습니다.
법무사 윤 씨가 안경을 고쳐 쓰며 계약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서 씨는 그 날짜를 한참 바라보다가 천 가방을 열었습니다. 손때 묻은 노트 열한 권이 책상 위에 쌓였습니다. 서 씨는 그중 한 권을 골라 천천히 넘겼습니다.
“10월 17일. 여기 있네.” 서 씨는 펼친 노트를 계약서 옆에 나란히 놓았습니다. 삐뚤빼뚤한 볼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엄마가 나를 못 알아봤다. 아줌마는 누구냐고 물었다. 기저귀 세 번 갈았다. 저녁은 죽 다섯 숟가락.’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남동생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그날은 정신이 잠깐 돌아오셨던 거야. 그런 날도 있잖아.” 그때 올케가 다급하게 끼어들었습니다. “맞아요, 어머님이 다 알아들으셨어요. 손이 떨리셔서 제가 도장을 대신 찍어 드린 것뿐이에요.”
남동생이 아내의 팔을 붙잡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윤 씨가 계약서를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어머님께서 직접 날인하신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올케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습니다.
서 씨의 눈이 계약서 맨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증인 칸에 낯익은 글씨로 서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니의 이름이었습니다. 7년 동안 한 번도 어머니를 보러 오지 않은 언니가, 어머니가 딸을 못 알아본 그날 그 서류에 증인으로 이름을 올렸던 것입니다.
“언니, 그날 엄마 집에 왔었어?” 서 씨가 물었습니다. 언니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막내가 나중에 내 몫도 챙겨 준다고 해서… 서명만 했어. 엄마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윤 씨는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맺은 계약은 효력을 다툴 수 있고, 본인이 아닌 사람이 도장을 찍었다면 더 무거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진료 기록과 간병 일지가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서 씨는 노트를 덮고 남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집 욕심 없다. 7년 동안 엄마 기저귀 갈면서 그 집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 그런데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본 날, 너희가 엄마 이름으로 도장 찍은 건 그냥 못 넘어간다.”
서 씨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정했습니다. 아파트를 어머니 재산으로 되돌려 놓고 법대로 나누자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노트를 들고 법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남동생은 끝내 고개를 떨구고 등기를 바로잡겠다는 확인서에 서명했습니다. 언니는 사무실을 나서며 “미안하다”는 말만 겨우 남겼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긴 병 곁을 끝까지 지킨 자식은 어느 집에나 있게 마련이고, 그 자식의 시간은 어떤 서류보다 정직하게 남습니다. 날마다 적은 몇 줄의 글이 도장 찍힌 종이 한 장을 이길 때도 있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일을 공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수고를 모른 척하고 부모가 남긴 것부터 챙기려 한다면, 그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납니다. 함께 짊어지지 못했다면 적어도 그 짐을 진 사람 앞에서만큼은 정직해야 합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리던 아침, 서 씨는 7년 만에 세탁소 셔터를 끝까지 올렸습니다. 문에 붙어 있던 ‘배달 중’ 팻말을 떼어 내고, 구석 의자 위에 어머니가 쓰던 바늘쌈지를 올려 두었습니다. 다리미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자 서 씨는 창밖에 쌓이는 눈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