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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병상에 누우면 형제 사이에도 저마다 사정이 생깁니다. 멀어서, 바빠서, 형편이 어려워서 한 발씩 물러서다 보면 짐은 결국 한 사람에게 쏠립니다. 그리고 그 짐을 진 사람의 수고는 부모가 떠난 뒤 유산 앞에서 쉽게 잊히곤 합니다.
정 씨는 올해 쉰여덟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서 22년째 학습지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후 두 시면 교재를 가득 담은 가방을 메고 아이들 집을 돌고, 밤 아홉 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옵니다. 남편은 25년째 화물차를 몰고, 하나 있는 아들은 서른이 되어 서울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정 씨는 삼남매의 둘째입니다. 위로 큰오빠가, 아래로 남동생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시장 뒷골목에서 40년 동안 목공소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로 아버지는 대팻밥 냄새가 밴 손으로 삼남매의 도시락을 쌌습니다.
정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은 큰오빠만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목공소 불을 끄지 못하고 앉아 있다가 손수 짠 작은 책상을 정 씨 앞에 내밀었습니다. “너는 공부를 더 시켜야 할 아이인데, 미안하다.” 정 씨는 그 책상에서 방송통신대학 강의를 들었고, 그 공부 덕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6년 전 겨울, 아버지가 목공소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뇌경색이었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고 말이 어눌해졌습니다. 의사는 누군가 늘 곁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삼남매가 병원 휴게실에 모였습니다. 큰오빠가 팔짱을 낀 채 먼저 말했습니다. “나는 회사 일 때문에 꼼짝을 못 한다. 네 올케도 허리가 안 좋고.” 막내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누나, 우리는 가게 대출 이자 내기도 빠듯해.” 정 씨는 한참 창밖을 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알았어. 내가 할게.”
아버지는 평생 살던 옛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낮에는 간병인 윤 씨가 곁을 지켰고, 밤에는 정 씨가 수업을 마치고 와서 아버지 옆에 이부자리를 폈습니다. 간병인 비용은 한 달에 90만 원이었고, 입원할 때마다 병원비가 따로 들었습니다. 정 씨는 적금 두 개를 깨고 맡는 집을 열 곳이나 늘렸습니다. 남편은 통장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장인어른 일인데 당연하지. 당신 몸이나 챙겨.”
그렇게 6년이 흘렀습니다. 정 씨가 낸 간병인 비용과 병원비는 모두 8,000만 원이 넘었습니다. 큰오빠는 명절에 잠깐 들러 과일 상자를 두고 갔고, 막내 부부는 석 달에 한 번쯤 와서 “아버지 좀 어떠셔?” 하고는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마다 정 씨는 아버지의 마른 손을 주물렀습니다. 윤 씨가 말했습니다. “어르신이 따님 발소리만 들리면 눈을 뜨세요.”
올봄, 아버지는 정 씨 손을 잡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49재를 지내고 보름 뒤, 삼남매는 유산을 정리하러 시장 입구 건물 3층의 법무사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창문에는 빗물이 길게 흘렀습니다.
큰오빠는 옛집에서 가져온 자개 패물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함이었습니다. “아버지 패물함부터 열어 보자. 어머니 금붙이가 꽤 됐잖아. 공평하게 셋으로 나누면 되지.”
뚜껑이 열리자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함 안에는 반지 한 개, 목걸이 한 줄 없이 빛바랜 붉은 천만 깔려 있었습니다. 큰오빠가 정 씨를 쳐다보았습니다. “너, 이거 어떻게 된 거냐?” 막내 부부는 서로 눈을 피했습니다.
그때 법무사 최 씨가 서류철과 작은 녹음기를 꺼냈습니다. “나누시기 전에 들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고인께서 생전에 직접 맡기신 겁니다.” 최 씨가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느리고 어눌한 아버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누워만 있었지… 귀는… 다 들렸다.”
이어 전화 통화가 나왔습니다. 윤 씨가 아버지 머리맡에서 스피커를 켜 놓고 큰오빠에게 건 전화였습니다. “아드님, 이번 주가 어르신 생신이세요. 한 번 오시면 좋아하실 텐데요.” 수화기 너머 큰오빠의 목소리가 또렷했습니다. “어차피 둘째가 다 하는데 내가 뭘 가요. 무슨 일 있으면 그때나 연락 주세요.”
큰오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녹음은 계속되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사이로 막내 올케의 속삭임이 들렸습니다. “여보, 빨리. 형님 오기 전에.” 막내 목소리가 뒤따랐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우리 몫이야.” 자개함 뚜껑이 닫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시 아버지 목소리였습니다. “막내야… 그 쌍가락지는… 니 엄마가… 시집올 때 끼고 온 거다.” 한참 숨을 고르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집은… 둘째에게 준다. 너희가 미워서가 아니다. 내 곁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서다.”
최 씨가 서류철을 펼쳤습니다. “고인께서는 2년 전 간병인과 함께 공증 사무소에 가서 공정증서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 정본과 이 녹음을 제게 맡기시면서, 유산을 나누는 날 꼭 함께 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큰오빠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자식들한테는 법으로 정해진 몫이 있잖습니까.” 최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유류분을 청구하실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 전에, 고인께서 왜 이 녹음을 남기셨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막내 올케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막내는 가방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 탁자에 올렸습니다. “누나, 팔지는 않았어. 가게가 너무 어려워서… 미안해.” 주머니 안에는 어머니의 쌍가락지와 금목걸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정 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6년 동안 혼자 감당한 밤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정 씨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듣고도 아무 말 못 하고 누워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 씨는 큰오빠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오빠, 나는 돈 달라고 한 적 없어. 한 번만 와 달라고 했던 거야. 아버지도 그거 하나 기다리셨고.” 그리고 패물 주머니를 막내 앞으로 밀었습니다. “이건 어머니 산소에 가서 네 손으로 직접 말씀드리고 돌려놔. 집은 아버지 뜻대로 내가 지킬게.”
큰오빠는 끝내 유류분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며 정 씨에게 낮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내가… 아버지 산소에 자주 갈게.” 그 주말, 막내 부부는 어머니 산소 앞에 쌍가락지를 올려놓고 오랫동안 절을 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부모를 돌보는 일은 셈으로 나누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 못 하는 부모도 누가 곁에 있었는지는 압니다. 형편이 어렵다면 전화 한 통, 손 한 번 잡아 주는 일이라도 미루지 마세요. 부모가 떠난 뒤에는 그 한 번을 대신할 방법이 없습니다.
간병을 혼자 떠맡고 있다면 영수증과 기록을 차곡차곡 남겨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형제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서로 얼굴 붉히지 않기 위한 준비입니다.
늦가을, 정 씨는 남편과 함께 아버지의 옛집 마당을 쓸었습니다. 담장 옆 감나무에는 주홍빛 홍시가 매달려 있었고, 텅 빈 목공소 쪽으로 저녁 햇살이 비스듬히 들었습니다. 정 씨는 아버지가 짜 준 작은 책상을 마루에 내놓고, 해가 질 때까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