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5:49

“사돈 수술비 1500만원 보탰는데..” 1년 뒤 원무과에서 받은 정산서에 결단했다

자식이 혼인하면 사돈댁도 한 식구가 됩니다. 사돈어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부모 일처럼 마음이 쓰이고, 형편이 닿는 대로 돕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눈물에 마음이 움직여 건넨 돈이 훗날 집안에 깊은 금을 남기기도 합니다.

경상도의 한 소도시에 사는 강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군청에서 서른세 해를 일하고 정년퇴직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읍내 단층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공무원 연금으로 지냅니다. 슬하에 외아들 하나를 두었고, 아들은 대전에서 회사를 다니며 며느리와 함께 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강 씨는 며느리를 딸처럼 아꼈습니다. 처음 인사 오던 날은 마침 김장철이었습니다. 며느리는 강 씨가 마당 수돗가에서 배추를 절이는 것을 보고 말없이 옆에 쪼그려 앉아 소금을 뿌렸습니다. 강 씨는 그날 밤 아내에게 “저 아이는 마음 씀씀이가 참 곱다”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사돈어른과도 허물없이 지냈습니다. 사돈은 시장 골목에서 이십 년 넘게 열쇠 가게를 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손녀 돌잔치 날 두 사람은 소주잔을 부딪치며 “우리 둘 다 손녀 대학 가는 것까지는 봅시다” 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었습니다. 명절이면 사돈은 손수 담근 매실청을 보내왔고, 강 씨는 텃밭에서 캔 고구마 한 상자로 답했습니다.

1년 전 봄밤,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울음소리부터 들렸습니다. “아버님, 친정아버지 심장 혈관이 막혀서 수술을 받으셔야 한대요. 수술비가 1,500만 원이 넘는다는데 친정엔 그런 돈이 없어요.” 며느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강 씨는 그날 밤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퇴직금 일부를 묻어 둔 정기예금이 있었습니다. 둘 중 누가 크게 아프면 쓰자며 손대지 않던 돈이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사람 목숨 걸린 일에 따질 게 뭐 있어요.” 강 씨는 이튿날 아침 예금을 깨서 며느리 통장으로 1,500만 원을 보냈습니다. “얘야, 갚을 생각 말고 사돈어른 몸부터 챙겨라.”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덕분에 장인어른이 사셨어요”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강 씨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뒤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가을에 며느리의 남동생이 장가를 갔는데, 예단이 꽤 넉넉하게 오갔다는 말이 건너 건너 들려왔습니다. 겨울에 사돈댁에 들렀을 때는 부엌이 새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싱크대 앞에서 강 씨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남의 살림을 캐묻는 건 도리가 아니라며 말을 삼켰습니다.

올봄, 아들 내외가 바쁘다고 해서 강 씨가 사돈의 정기검진에 따라나섰습니다. 사돈은 운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고 빗방울이 듣던 날이었습니다. 대학병원 로비의 우산 꽂이마다 젖은 우산이 빼곡했고, 대기 번호표를 쥔 사람들로 의자가 모자랐습니다.

진료를 마친 사돈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진료 카드를 강 씨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강 씨는 원무과 창구에 줄을 섰다가 수납을 하며 무심코 말했습니다. “작년에 수술비가 많이 나와서 고생하셨지요. 오늘은 얼마나 나옵니까?”

직원은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작년 수술은 중증 산정특례가 적용돼서 본인 부담이 크지 않았어요. 그것도 실손보험으로 거의 다 처리돼서 실제로 내신 돈은 얼마 안 나오셨고요.” 직원은 정산 내역서 한 장을 뽑아 건넸습니다. 맨 아래 칸의 숫자는 강 씨가 보낸 돈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강 씨는 종이를 든 채 창구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돌아온 사돈은 그 종이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와이퍼 소리만 한참 이어지다가 사돈이 입을 열었습니다. “사돈, 면목이 없습니다. 보험 나올 줄은 알았는데, 막내 장가보낼 돈이 급해서…….”

돈은 남동생 혼인 예단과 부엌 공사에 쓰였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도 처음부터 보험금이 나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강 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의 목소리는 차가웠습니다. “아버지, 드린 돈을 이제 와서 따지세요? 집사람 친정 형편 뻔히 아시잖아요.”

강 씨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마당에 나가 오래 서 있었습니다. 돈보다 아픈 것은 그 밤의 울음이었습니다. 며느리의 눈물이 계산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들이 끝까지 아내 편에 섰다는 것이 가슴을 눌렀습니다.

며칠 뒤 강 씨는 아내와 함께 아들 집을 찾았습니다. 식탁 위에 정산 내역서와 송금 영수증을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돌려 달라고는 안 하겠다. 다만 이 돈이 어떻게 건너갔는지는 너희도 나도 잊지 말자. 앞으로 우리 집 돈은 우리 부부 병원비와 노후에만 쓴다. 어떤 사정이 생겨도 돈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마라.” 며느리는 고개를 숙인 채 울었고, 아들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강 씨는 남은 예금을 부부 이름의 병원비 통장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는 아들에게 한마디만 덧붙였습니다. “손녀는 언제든 데려와라. 그건 돈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가족을 돕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다만 큰돈이 오갈 때 사정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예의입니다. 진단서 한 장, 영수증 한 장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훗날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 줍니다.

올가을 강 씨는 아내와 함께 마당 감나무에서 감을 땄습니다. 장대 끝에 매달린 감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빛났고, 담장 너머 들녘에서는 볏짚 태우는 냄새가 실려 왔습니다. 두 사람은 툇마루에 감 바구니를 내려놓고 해가 질 때까지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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