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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끝까지 모신 자식과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자식이 꼭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곁을 지킨 자식은 부모가 건넨 말 한마디를 믿고 버팁니다. 그 약속만큼은 형제 사이에서도 지켜질 거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최 씨는 올해 쉰여덟입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 재래시장 골목에서 22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나물을 데치고 멸치를 볶아 진열장을 채웁니다.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지금은 가게 배달을 돕고, 외동딸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최 씨는 삼 남매의 둘째입니다. 위로 네 살 많은 큰오빠, 아래로 네 살 어린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시골 마을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세 자식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에게 큰오빠는 늘 집안의 기둥이었습니다. 오빠가 도시 고등학교에 붙자 어머니는 송아지를 팔아 하숙비를 댔습니다. 최 씨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봉제 공장에 들어가 오빠에게 용돈을 부쳤습니다. 오빠가 장가갈 때 신혼집 장롱을 들여 준 것도 최 씨가 3년 동안 부은 적금이었습니다.
“우리 딸은 손이 야무져서 어디 가도 굶진 않는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최 씨에게는 늘 덜 주었습니다. 명절이면 고기반찬은 오빠 밥상에 먼저 올라갔고, 최 씨는 부엌에서 전을 부쳤습니다. 최 씨는 그것이 맏이를 세우는 어머니의 방식이라고 여겼습니다.
6년 반 전,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한쪽 몸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나선 자식은 최 씨뿐이었습니다. 오빠는 “집사람이 허리가 안 좋다”고 했고, 막내는 “단칸방이라 누나가 모시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최 씨는 가게 뒷방을 치우고 어머니를 모셔 왔습니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아 일부 도움을 받았지만, 가게 문을 여는 낮 동안 부르는 간병인 비용은 고스란히 최 씨 몫이었습니다. 다달이 100만 원 가까운 돈이 반찬값에서 나갔습니다. 어머니 통장은 “장남이 관리해야 뒷말이 없다”며 오빠가 가져갔습니다. 간병비를 조금 보태 달라는 말에 오빠는 “어머니 통장엔 돈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그렇게 1년쯤 지난 어느 밤, 어머니가 최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얘야, 집은 장남을 줘야 제사를 모시지. 대신 뒷밭은 너 주마. 그런데 오빠가 형편이 어려워서 증여세 낼 돈이 없단다. 네가 좀 내 줄 수 없겠니.”
세금은 1800만 원이었습니다. 최 씨는 딸 결혼 자금으로 붓던 적금을 깨고, 모자란 돈은 몇 달 치 가게 수입으로 메웠습니다. 남편은 한숨을 쉬면서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장모님이 밭 주신다니 그걸로 됐소.” 오빠는 고맙다는 말 대신 “어머니 뜻이니까”라고만 했습니다.
간병은 그 뒤로도 5년이 더 이어졌습니다. 오빠는 명절에나 얼굴을 비쳤고, 올 때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은행에 다녀왔습니다. 막내는 그마저도 드물었습니다. 최 씨는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며 가끔 뒷밭을 떠올렸습니다. 거기에 들깨를 심어 어머니 방식대로 들기름을 짜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올봄, 어머니는 가게 뒷방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여섯 달 가까이 지나 상속세 신고 기한이 다가오자, 오빠가 읍내 세무사 사무실에서 모이자고 연락해 왔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약국 2층 세무사 사무실 탁자에는 종이컵에 담긴 보리차가 세 잔 놓여 있었습니다. 최 씨는 앞치마만 겨우 벗고 달려온 터라 손에서 마늘 냄새가 났습니다. 오빠는 새 점퍼 차림이었고, 막내는 창가에 앉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세무사 한 씨가 서류철을 펼쳤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10년 안에 어머님이 자녀분들께 증여하신 재산은 상속재산에 합산해서 신고해야 합니다. 증여 내역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첫 줄에는 5년 전 오빠에게 넘어간 시골집이 적혀 있었습니다. 최 씨가 세금을 대신 내 준 바로 그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줄에서 최 씨의 눈이 멈췄습니다. 낯익은 지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주마고 했던 그 뒷밭이었습니다.
“세무사님, 이 밭은 아직 어머니 명의 아닌가요?”
한 씨가 서류를 다시 넘겨 보았습니다. “3년 전에 큰아드님 앞으로 증여 등기가 끝났습니다. 증여세 신고도 그때 하셨고요.”
최 씨는 오빠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빠는 종이컵만 만지작거렸습니다. 한 씨가 조심스럽게 다음 장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계좌에서 큰아드님 계좌로 여러 차례 이체된 기록이 있습니다. 6년 동안 합치면 4천만 원이 넘습니다. 이것도 증여로 볼 수 있어서 신고에 넣어야 합니다.”
날짜를 보니 오빠가 명절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은행에 다녀온 날들이었습니다. 간병비를 보태 달라는 말에 “통장엔 돈이 없다”던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오빠, 어머니가 나한테 밭 준다고 하신 거 오빠도 들었잖아.”
“어머니가 마음을 바꾸신 걸 나더러 어쩌라고. 맏이가 산소 돌보고 제사 지내야 하니까 그러신 거지.”
그때 창가에 있던 막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형, 이제 그만해. 누나도 알 건 알아야지.”
최 씨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너는… 알고 있었니?”
막내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3년 전에 어머니 모시고 법무사 사무실 간 게 나야. 누나가 알면 시끄러워진다고, 나중에 형이 다 정리해 준다고 해서….”
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6년 동안 밤마다 어머니를 일으켜 앉히던 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습니다. 밭을 못 받은 것이 서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반찬값을 떼어 간병비를 내는 동안, 두 형제는 같은 비밀을 나눠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 씨는 숨을 고르고 세무사에게 말했습니다. “법대로 신고해 주세요. 저는 받은 게 없으니 적을 것도 없겠네요.” 그리고 오빠를 똑바로 보았습니다. “오빠, 밭은 됐어. 그런데 내가 낸 1800만 원은 어머니 돈이 아니라 내 딸 결혼 적금이었어. 그건 돌려줘.” 오빠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한 씨가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따님께서는 따로 법률 상담을 받아 보셔도 됩니다.”
최 씨는 우산을 펴고 혼자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빗속을 걸으며 어머니가 마지막 겨울에 서랍에서 꺼내 준 금가락지를 떠올렸습니다. “니가 제일 고생했다. 이거라도 끼거라.” 그때는 그저 고마웠던 그 말이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어머니가 왜 약속을 거두었는지는 이제 물어볼 곳이 없었습니다.
한 달 뒤, 막내가 가게로 찾아와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형에게 받은 돈이니 누나가 가지라고 했습니다. 최 씨는 봉투를 밀어냈습니다. “네 미안한 마음만 받을게. 내 돈은 형한테 받을 거다.” 오빠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최 씨는 남편과 상의해 무료 법률 상담을 신청해 두었습니다.
『흥부전』의 놀부는 부모가 남긴 재산을 혼자 차지하고 아우를 내쫓았습니다. 옛이야기 속 욕심은 박 한 통으로 벌을 받지만, 현실의 욕심은 서류 한 장 뒤에 조용히 숨어 있습니다.
부모의 말 한마디만 믿고 큰돈을 내놓기 전에 그 약속이 어디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한 번은 확인해 보세요. 가족끼리 서류를 따지는 것이 야박해 보여도, 그것이 오히려 형제 사이를 지키는 길이 됩니다. 그리고 곁을 지킨 시간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해 김장철, 최 씨는 시장 골목 가게 앞에 커다란 고무 대야를 내놓고 고들빼기를 버무렸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멸치젓을 달여 넣고 찹쌀풀을 쑤었습니다. 손가락에 낀 금가락지에 붉은 양념이 묻었지만 최 씨는 빼지 않았습니다. 찬바람 부는 골목에 매콤한 냄새가 오래도록 퍼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