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14:45

“사돈 상속세 2500만원 빌려줬는데..” 집들이 술잔 앞에서 드러난 사돈과 며느리의 민낯

자식을 짝지어 보내면 사돈은 남이면서도 남이 아닌 사이가 됩니다. 서로 어려운 자리라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고, 그래서 사돈이 손을 내밀면 거절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사돈 사이에 오간 돈은 차용증 대신 체면과 믿음으로만 남기 마련입니다.

충청도 어느 읍내 시장 골목에서 떡방앗간을 하는 박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서른셋에 남편과 함께 방앗간을 차려 3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남편은 7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는 혼자 새벽 세 시에 보일러를 켜고 쌀을 불려 떡을 찝니다. 외아들은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며 며느리와 함께 손녀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인 사돈댁과는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습니다. 아들 결혼 때 박 씨는 이바지 음식에 들어갈 떡을 사흘 밤을 새워 직접 빚었습니다. 사돈댁은 그 떡 상자를 받아 들고 “이런 정성은 처음 본다”며 박 씨의 손을 오래 놓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사돈댁은 김장철마다 마른 고추를 자루째 싣고 방앗간에 찾아왔습니다. 박 씨는 한 번도 빻는 값을 받지 않았습니다. 손녀 백일과 돌에는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몇 말씩 쪄서 보냈습니다. 사돈댁은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사돈은 떡 하나로 사람 마음을 산다”고 자랑했습니다.

2년 전 봄, 바깥사돈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석 달쯤 지난 어느 저녁, 사돈댁이 며느리와 함께 방앗간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사돈, 염치없는 줄 알지만 갈 데가 없어서 왔어요. 바깥양반 앞으로 된 집에 상속세가 나왔는데 모자라는 돈이 2500만 원이에요. 기한 안에 못 내면 집이 넘어가게 생겼어요.”

며느리도 눈물을 훔치며 거들었습니다. “어머님, 1년 안에 꼭 갚을게요. 엄마가 살 집이 그 집 하나뿐이에요.”

박 씨에게는 5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 있었습니다. 낡은 떡 찜기와 제분기를 바꾸려고 떡값에서 하루 몇천 원씩 떼어 모은 돈이었습니다. 박 씨는 이튿날 은행에 가서 만기를 넉 달 앞둔 적금을 깼습니다. 이자는 손해였지만 사돈댁이 길에 나앉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용증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1년이 지나도 돈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는 “엄마가 아직 정리가 덜 됐대요” 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박 씨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사돈 사이에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들 얼굴에 먹칠하는 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사이 찜기 이음새에서 김이 새기 시작했고, 박 씨는 수리 기사를 불러 땜질로 버텼습니다.

올해 10월, 며느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돈댁이 새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생일을 겸해 집들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 씨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집이 넘어가지 않고 형편이 나아진 모양이라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집들이 날 아침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박 씨는 새벽부터 팥시루떡 한 시루와 생일상에 올릴 무지개떡을 쪘습니다. 새집에는 팥떡을 해 가야 액운이 물러간다는 어른들 말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떡 상자를 보자기에 싸서 아들 차에 실었습니다.

새 아파트는 거실 창이 넓고 바닥에 윤이 났습니다. 사돈댁의 친척과 동창들이 열 명 넘게 모여 있었습니다. 사돈댁은 박 씨가 가져온 떡을 상 한가운데 놓으며 “우리 사돈 떡은 시장에서도 알아줘요” 하고 웃었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술잔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사돈댁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최 씨가 잔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얼굴이 불그레했습니다.

“자, 우리 친구 새집 장만한 거 축하하자고. 근데 너 복도 많다. 바깥양반 상속세 한 푼도 안 냈다며? 배우자 공제로 다 빠졌다더라. 그 돈 굳혀서 이 집 계약금 넣었다고 자랑했잖아.”

거실이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사돈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며느리는 들고 있던 접시를 내려놓았습니다. 박 씨는 손에 든 젓가락을 천천히 상 위에 놓았습니다.

박 씨도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살아 있으면 공제받는 금액이 커서, 웬만한 집 한 채로는 상속세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사돈댁 사정이 특별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장모님, 그 2500만 원이 상속세가 아니었어요? 이 집 계약은 언제 하셨어요?”

사돈댁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최 씨가 영문을 모른 채 말을 보탰습니다. “재작년 여름이지. 분양받았다고 우리 모임에서 한턱냈잖아.”

재작년 여름은 박 씨가 적금을 깬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아들이 며느리를 돌아보았습니다. “당신도 알았어?”

며느리는 한참 입술을 깨물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계약금이 급하다고 해서요…. 어머님은 세금 잘 모르시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면 그냥 넘어가실 줄 알았어요.”

친척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고, 최 씨는 그제야 사정을 알아차리고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상 한가운데 놓인 팥시루떡에서는 아직 김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박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돈댁 앞에 섰습니다.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습니다.

“사돈, 나는 돈이 아까워서 서운한 게 아니에요. 집 넘어간다고 울던 그 얼굴을 믿고 기계 바꿀 돈을 내놨는데, 그 눈물이 이 집 계약금이었다는 게 서운한 거예요. 그 돈은 차용증 쓰고 다달이 갚으세요. 사돈 사이라도 이제 셈은 셈대로 하겠어요.”

그리고 며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얘야, 너는 내 손녀 엄마니까 내치지는 않으마. 그래도 오늘 일은 잊지 않을 거다.”

박 씨는 빈 떡 보자기만 챙겨 들고 현관을 나섰습니다. 아들이 우산을 들고 말없이 뒤따라 나왔습니다. 그 주가 가기 전, 사돈댁은 아들 편에 차용증과 함께 첫 달 치 100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빌려줄 때는 앉아서 주고 받을 때는 서서 받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돈을 건넬 때의 마음이 아무리 따뜻해도 셈을 흐리게 두면 결국 사람까지 흐려집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차용증 한 장이 정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기도 합니다.

눈물 앞에서 지갑을 여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입니다. 다만 그 사연이 맞는지 한 번쯤 따져 보는 것은 상대를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정을 오래 지키려면 먼저 내 몫부터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리던 새벽, 박 씨는 여느 때처럼 방앗간에 불을 넣었습니다. 땜질한 찜기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기계에서 갓 뽑은 가래떡이 길게 이어져 나왔습니다. 박 씨는 뜨끈한 떡 한 가닥을 손녀 몫으로 따로 덜어 두고, 유리문 밖으로 소복이 쌓이는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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