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는 세월이 흘러도 쉽게 남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면 차용증을 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받을 생각을 접어 두곤 합니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돈은 긴 세월 동안 조용히 우정을 갉아먹기도 합니다.
조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서른다섯 해째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일군 비탈밭을 물려받아 이천 평 남짓으로 늘렸습니다. 아내와 둘이 농사를 짓고, 아들은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며, 딸은 시집가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조 씨에게는 초등학교 동창 강 씨가 있었습니다. 같은 마을 아랫집에 살던 강 씨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도시락을 못 싸 오는 강 씨를 위해 조 씨는 어머니께 밥을 한 주걱 더 담아 달라고 졸랐습니다. 둘은 학교 뒤 개울가에서 도시락 하나를 나눠 먹으며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마친 강 씨는 일자리를 찾아 바닷가 도시로 떠났습니다. 횟집 주방에서 칼을 잡기 시작해 서른 해 가까이 남의 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그사이 조 씨는 강 씨 어머니 빈소를 사흘 내내 지켰고, 강 씨 아들 돌잔치와 결혼식에도 빠짐없이 봉투를 들고 갔습니다. 정작 조 씨 아버지 상에는 강 씨가 바쁘다며 오지 않았지만, 조 씨는 서운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12년 전 이른 봄, 강 씨가 과수원으로 찾아왔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던 조 씨 곁에 쪼그려 앉은 강 씨는 한참 담배만 태우다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내 가게를 하나 내고 싶다. 자리는 봐 놨는데 보증금이 모자라. 3500만원만 빌려주면 일 년 안에 갚을게. 너 말고는 부탁할 데가 없다.”
그 돈은 조 씨가 저온 저장고를 지으려고 6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사과값이 좋은 해에도 나쁜 해에도 한 달을 거르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아내가 “그래도 적을 건 적어 둬요” 하며 종이를 내밀자, 강 씨는 그 자리에서 차용증 두 장을 써서 한 장씩 나눠 가졌습니다. 조 씨는 이튿날 적금을 깨 강 씨에게 돈을 보냈습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돈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조 씨가 조심스레 전화를 걸면 강 씨는 “요즘 장사가 영 시원찮다”며 말을 돌렸고, 언제부턴가는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조 씨는 저장고 짓는 일을 미룬 채 수확한 사과를 헐값에 바로 넘기며 몇 해를 버텼습니다.
그사이 마을에는 강 씨가 크게 성공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바닷가에 이층짜리 횟집을 냈고 외제 승용차를 몬다고 했습니다. 동창회에 나올 때마다 강 씨는 술값을 혼자 계산하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조 씨는 ‘형편이 피었으니 언젠가는 갚겠지’ 하며 혼자 삭였습니다.
올해 추석 연휴 둘째 날 저녁, 읍내 고깃집 이층에서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낮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창밖 젖은 논둑에서 풀벌레 소리가 올라왔습니다. 긴 상 위에 불판과 소주병이 줄지어 놓였고, 스무 명 남짓한 동창들이 모처럼 얼굴을 맞댔습니다.
그날 강 씨는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왔습니다. 금목걸이를 한 강 씨 옆에서 아내는 갈색 핸드백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인사를 나눌 때 그녀가 자신을 오래 바라보는 것 같아 조 씨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강 씨가 잔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내가 하나만 말할게. 내 가게는 누구 도움 하나 없이 내 손으로 일궜다. 맨손으로 바닷가 내려가서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너는 아직도 사과 따냐? 평생 그 비탈에서 사과만 따다 늙을래?”
강 씨가 조 씨를 가리키자 몇몇 동창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조 씨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강 씨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핸드백에서 반으로 접힌 종이를 꺼내 상 위에 펼쳤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는 강 씨의 서툰 글씨로 ‘금 삼천오백만 원정, 일 년 안에 갚겠음’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 강 씨의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여보, 누구 도움 없이 일궜다고요? 당신이 갚았다던 3500만원, 이분 아직 한 푼도 못 받으셨잖아요.”
왁자하던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강 씨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당신, 그걸 왜 여기서….” 강 씨가 말끝을 흐리자 아내는 조 씨 쪽으로 돌아서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가게 열고 삼 년째 되던 해에 이 사람이 그랬어요. 빌린 돈은 다 갚았다고요. 그 뒤로도 해마다 연말이면 장사한 돈에서 따로 떼어 줬어요. 고향에 신세 진 데가 있으면 다 갚고 오라고요. 그런데 지난달 이 사람 서랍을 정리하다 이 종이를 찾았어요.”
아내가 해마다 떼어 준 돈은 유흥주점과 노름판에서 모두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스스로 바로잡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 아내는 동창들 앞에서 매듭을 짓겠다며 처음으로 따라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창 하나가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나도 오 년 전에 수족관 고친다길래 300만원 빌려줬는데 아직 못 받았다.” 옆자리 동창도 말을 보탰습니다. “나는 급한 물건값이라고 500만원 보냈다. 나 혼자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랬구나.” 술값을 혼자 내던 ‘성공한 사장’의 민낯이 동창회 한가운데서 드러났습니다.
조 씨는 한참 차용증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습니다. “친구야, 나는 돈 못 받은 것보다 오늘 네 말이 더 아프다. 네 가게 보증금, 내가 딴 사과에서 나온 거다.” 강 씨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강 씨 아내는 앞으로 가게 통장과 도장을 자신이 관리하며 매달 장사한 돈에서 직접 갚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두 동창의 돈도 함께 갚겠다고 했습니다. 조 씨가 “부인이 진 빚도 아닌데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하고 말렸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말, 조 씨 통장에 12년 만에 처음으로 강 씨 횟집에서 보낸 돈이 들어왔습니다.
오랜 친구 사이의 돈은 정으로 빌려주고, 정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말없이 삭이는 사이에 상대는 빚을 잊고 고마움마저 지워 버리기도 합니다. 친구 사이일수록 약속은 분명히 적어 두고, 서운한 것은 제때 말하는 편이 오히려 우정을 지키는 길입니다.
남을 깎아내려 자신을 높이는 사람보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일구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오래된 친구에게 안부를 물을 때, 서로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말 한마디를 건네 보세요.
시월 하순, 조 씨네 과수원에는 부사가 빨갛게 익어 갔습니다. 조 씨는 아내와 함께 비탈을 오르내리며 사과를 땄습니다. 바구니가 찰 때마다 허리를 펴고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내가 건넨 사과 한 알을 옷소매에 쓱 닦아 베어 물자 달고 시원한 즙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내년 봄에는 미뤄 둔 저온 저장고를 짓자고, 조 씨는 아내에게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