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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한다고 건넨 그 한마디가 과연 위로였을까. 조문객은 무심코 한 말이라도 상주는 장례가 끝난 뒤까지 그 말을 곱씹는다. 나이가 들수록 빈소에 갈 일은 잦아지고, 익숙해진 만큼 말도 쉽게 나온다.
장례식장에서 필요한 말은 길지 않다. 무엇을 말할지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아는 사람이 더 깊은 위로를 남긴다. 조문 자리에서 삼가야 할 말과 행동을 순서대로 짚어 본다.
3위. 오랜만에 만났다고 근황부터 늘어놓는 일
빈소에서 옛 동료나 동창을 마주치면 반가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상주와 몇 년 만에 만났다면 자녀 이야기, 건강 이야기가 절로 이어진다. 하지만 상주는 지금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족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서 있다.
안부를 길게 묻는 순간 상주는 슬픔을 잠시 내려놓고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한다. 뒤에서 다른 조문객이 기다리는데 붙잡혀 있는 것도 부담이다. 반가움은 짧은 눈인사로 충분하다. 회포는 장례가 끝난 뒤 따로 연락해 풀어도 늦지 않다.
2위.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캐묻는 일
“어디가 편찮으셨어요?”, “병원에는 언제부터 계셨어요?” 걱정에서 나온 질문이지만 상주에게는 가장 힘든 기억을 다시 꺼내게 하는 말이다. 같은 대답을 하루 종일 되풀이해야 하는 유족도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상처는 더 깊어진다.
상주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그때 조용히 들어 주면 된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억지로 말을 지어낼 필요도 없다. 고개를 숙여 목례하고 잠시 손을 맞잡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짧은 침묵이 서툰 말보다 더 많은 마음을 전한다.
1위. “호상이네요”, “그래도 오래 사셨잖아요”
고인이 연세가 많았다면 위로 삼아 쉽게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 밑에는 ‘이 정도면 크게 슬퍼할 일은 아니다’라는 뜻이 깔려 있다. 자식에게 부모와의 이별은 아흔에 오든 백 살에 오든 이르다. 남이 슬픔의 크기를 정해 버리면 상주는 마음 놓고 울 자리를 잃는다.
대신 건넬 말은 단순할수록 좋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도면 된다. 고인과 얽힌 좋은 기억이 있다면 한 줄만 덧붙여도 좋다. 위로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곁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조문 자리에서 말을 아끼는 것은 무심함이 아니다. 슬픔을 재단하지 않고, 사연을 캐묻지 않고, 내 반가움을 앞세우지 않는 태도가 상주에게는 가장 큰 배려가 된다.
다음에 빈소에 들어설 때는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한마디만 건네고, 나머지는 고개 숙임과 침묵에 맡기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