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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돈을 건넬 때 부모는 차용증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사위에게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서류를 내밀면 정이 상할까 봐 말 한마디만 믿고 평생 모은 돈을 내어 줍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어긋났을 때에야 서류가 왜 필요했는지 알게 됩니다.
남해안의 한 항구 도시에 사는 한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25년 동안 보험설계사로 일하다 3년 전 은퇴했습니다. 시장 골목 생선 가게부터 조선소 기숙사까지 발로 뛰며 계약을 따냈고, 고객들에게는 늘 “서류는 꼭 챙겨 두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남편은 6년 전 병으로 먼저 떠났고, 외동딸은 결혼해 같은 도시에 삽니다.
사위는 마흔두 살입니다. 안경 체인점에서 12년 동안 안경사로 일했습니다. 손이 꼼꼼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인사를 오던 날, 사위는 한 씨의 안경테가 비뚤어진 것을 보더니 작은 드라이버를 꺼내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장모님, 이제 똑바로 보이시죠?” 한 씨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남편이 투병하던 마지막 겨울, 사위는 퇴근하면 곧장 병원으로 와서 장인의 손톱을 깎아 드렸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는 혼자 남은 장모에게 돋보기를 맞춰 주며 말했습니다. “약봉지 글씨 작은 거 보실 때 쓰세요.” 한 씨는 그 돋보기를 지금도 머리맡에 둡니다.
2년 전 봄, 사위가 무릎을 꿇다시피 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장모님, 제 가게를 내고 싶습니다. 장모님 덕에 차리는 가게라고 평생 생각하겠습니다.” 딸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엄마, 이 사람 찾는 손님이 많아. 남 밑에서 일하기 아까워.”
한 씨는 사흘을 고민했습니다. 25년 동안 새벽 버스를 타고 다니며 모은 노후 자금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금을 깨고,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저축성 보험 하나까지 해약해 1억 원을 만들었습니다. 고객에게는 늘 차용증을 받아 두라고 했으면서, 정작 사위에게는 “그런 거 쓰면 정 없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돈은 네 번에 나눠 사위 계좌로 보냈습니다.
가게는 항구 옆 상가 1층에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몇 달은 한 씨도 틈틈이 나가 진열장 유리를 닦고 전단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1년쯤 지나자 사위는 장모가 오면 어딘가 불편한 얼굴을 했습니다. “장모님, 바쁘실 텐데 굳이 안 나오셔도 됩니다.” 딸은 친정에 와서도 가게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돌렸습니다. 한 씨는 장사가 힘든가 보다 하고 더 묻지 않았습니다.
개업 2주년 날은 바람이 차고 하늘이 맑았습니다. 한 씨는 꽃집에서 잎이 동전처럼 동그란 금전수 화분을 골라 ‘번창하세요, 장모 드림’이라고 적은 리본을 달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화분을 안고 상가 앞에 서자 가게 안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문을 열자 사돈이 가게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분홍 재킷을 차려입은 사돈은 손님들 손을 잡으며 인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내가 우리 아들 가게 하나 차려 줬더니 다들 이렇게 와 주시네.” 단골인 듯한 할머니가 “아드님 효도 받으시겠어요” 하자 사돈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습니다.
한 씨는 화분을 든 채 계산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계산대 뒤 벽에 금색 테두리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이었습니다. 상호 아래 대표자 칸에는 사위가 아니라 사돈의 이름 석 자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사돈이 한 씨를 알아보고 다가왔습니다. “어머, 사부인 오셨어요? 저 액자 내가 골라서 걸었어요, 예쁘죠? 처가에서도 조금 보태 주셨다면서요. 정말 고마워요.” ‘조금’이라는 말이 한 씨의 귀에 오래 남았습니다. 검안실 앞에 서 있던 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사위는 렌즈를 깎던 손을 멈춘 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한 씨는 화분을 계산대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축하해요, 사돈.” 그 한마디만 남기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으로 항구의 크레인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딸이 찾아왔습니다. “엄마, 미안해. 이 사람이 예전에 시동생 사업에 보증을 섰다가 연체 기록이 남았어. 대출도 안 나오고 가게 계약도 어려워서 어머님 명의로 냈어. 어머님한테는 엄마 돈을 조금이라고만 말했대.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나도 말을 못 했어.”
한 씨는 딸의 손을 한참 잡고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서운한 건 돈이 아니다. 너희가 나를 속여도 되는 사람으로 여긴 게 서운한 거다.”
딸이 돌아간 뒤 한 씨는 장롱에서 통장 네 개를 꺼냈습니다. 25년 동안 남의 서류를 챙기던 손으로 이번에는 자기 서류를 정리했습니다. 송금 날짜와 금액을 한 줄씩 옮겨 적고 이체 확인증을 출력했습니다. 가게 명의가 사돈 앞으로 되어 있으니, 서류만 보면 그 돈은 누구에게 빌려준 것인지 흐릿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분명히 해 두어야 했습니다.
새벽녘에 한 장짜리 차용 확인서가 완성되었습니다. 1억 원을 사위에게 빌려주었다는 사실과 네 번의 송금 내역, 그리고 매달 말일에 100만 원씩 갚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한 씨는 사위를 집으로 불러 식탁 위에 그 종이를 올려놓았습니다. “자네 사정은 들었네. 명의는 그럴 수 있었다고 치세. 하지만 내 돈을 ‘조금 보탠 돈’으로 만든 건 그냥 넘길 수 없네. 이건 빌려준 돈이야. 서명하게.”
사위는 한참 종이를 내려다보다 펜을 들었습니다. “장모님, 어머니께도 제가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말을 한번 시작하니까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앞으로 너희 집 일에 내 돈은 더 들어가지 않네. 반찬은 해 주겠지만 돈은 여기까지야.”
그달 말일, 한 씨의 통장에 10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입금 메모에는 ‘장모님 상환 1회’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사돈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사부인, 제가 뭘 모르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친할수록 셈은 바르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 사이에 서류를 쓰는 것은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이 엇갈리지 않게 붙잡아 두는 일입니다. 큰돈을 건넬 때는 계좌로 보내고, 주는 돈인지 빌려주는 돈인지 한 줄이라도 적어 두세요. 자식에게 내어 줄 것과 내 몫으로 지킬 것 사이에 선을 긋는 일도 부모의 몫입니다.
초겨울 어느 오후, 한 씨는 사위가 맞춰 준 돋보기를 가방에 넣고 항구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빨간 등대 아래로 고깃배 몇 척이 천천히 들어왔고, 기운 햇살이 물결 위에서 잘게 부서졌습니다. 한 씨는 방파제 끝 벤치에 앉아 마지막 배가 들어올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