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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노후 자금은 마지막 울타리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어렵다며 손을 내밀면 그 울타리를 허물어서라도 건네고 싶은 게 부모 마음입니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끝까지 묻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마음 때문입니다.
경기도 남쪽의 한 도시에 사는 최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스물여섯에 9급으로 들어가 구청 민원실과 세무과를 오가며 32년을 일했고, 예순에 정년퇴직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서 연금으로 삽니다. 외아들은 마흔둘로, 결혼해 초등학생 손자를 하나 두었습니다.
최 씨는 평생 남의 서류를 한 장 한 장 확인하며 산 사람이었습니다. 도장 하나, 숫자 하나 틀리지 않게 보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런 최 씨도 아들 일에는 눈이 어두웠습니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학원비를 몰래 써 버렸을 때도, 스물아홉에 카드빚 800만 원을 들고 왔을 때도 최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갚아 주었습니다. “아버지,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아들은 그때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성실한 데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그만둔 뒤 갈빗집 숯불 피우는 일부터 시작해 십 년 넘게 고깃집 주방과 홀을 지켰습니다. 명절이면 고기를 싸 들고 와 아버지 앞에서 직접 구웠습니다. “아버지, 나중에 제 가게 차리면 맨 첫 손님은 아버지예요.” 최 씨는 그 말이 그렇게 듬직할 수 없었습니다.
3년 전 봄, 아들 내외가 찾아왔습니다. 아들은 상가 도면을 펼쳐 놓고 한참을 설명했습니다. “아버지, 자리 좋은 데가 나왔어요. 지금 아니면 평생 남 밑에서 고기만 굽다 끝나요.” 며느리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아버님, 저희가 이자처럼 매달 꼭 챙겨 드릴게요.”
최 씨가 퇴직할 때 받은 돈은 정기예금에 고스란히 묶여 있었습니다. 아내가 무릎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쓰려고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다시 넣으며 지킨 돈이었습니다. 32년 동안 점심값을 아껴 가며 모은 돈이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다 주지는 말자”고 했지만, 최 씨는 은행에 가서 예금을 깨 1억5000만 원을 아들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네 이름 걸고 하는 가게다. 남한테 손가락질만 받지 마라.”
가게는 시 외곽 먹자골목에 문을 열었습니다. 개업식 날 최 씨는 첫 손님으로 앉아 삼겹살 2인분을 먹었습니다. 그 뒤로는 바쁘다는 아들 말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괜히 가서 일하는 데 방해가 될까 싶었습니다.
며느리가 말한 ‘이자 같은 돈’은 처음 몇 달 들어오다 끊겼습니다. 아들은 전화할 때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요”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손자 생일이면 새 차 앞에서 찍은 사진이 아내 휴대전화로 왔습니다. 최 씨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묻지 않았습니다. 묻는 순간 아들을 의심하는 아버지가 될 것 같았습니다.
지난달 말, 아들이 혼자 집에 찾아왔습니다. 소파에 앉자마자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버지, 가게가 폐업 직전이에요. 5000만 원만 더 있으면 버틸 수 있어요. 아버지 연금 나오는 걸로 대출이라도 좀 받아 주세요.” 아내는 부엌에서 행주를 쥔 채 굳어 있었습니다. 최 씨는 “생각해 보마”라고만 하고 아들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날 밤 최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문을 닫을 지경이라면 아버지가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최 씨는 아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점심때였습니다. 먹자골목 끝 아들 가게 앞에는 우산을 접은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불판마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직원 셋이 쟁반을 들고 바쁘게 오갔습니다. 최 씨는 우산을 든 채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계산대에 낯익은 얼굴이 앉아 있었습니다. 며느리의 남동생이었습니다. 사돈총각은 최 씨를 보고 화들짝 일어섰습니다. “어, 사돈어른…. 연락도 없이 어쩐 일로….”
최 씨의 눈은 계산대 위 벽에 걸린 금색 액자에 가 있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이었습니다. 32년 동안 셀 수 없이 들여다본 바로 그 서류였습니다. 상호 아래 대표자 칸에는 아들 이름이 아니라 사돈총각의 이름 석 자가 또박또박 찍혀 있었습니다. 개업 날짜는 3년 전 그 봄이었습니다.
그때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아들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를 본 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최 씨는 액자를 가리켰습니다. “이게 뭐냐. 네 가게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들은 손님들 눈을 피해 아버지를 창고 쪽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버지, 제 이름으로 하면 예전 카드 연체 기록 때문에 대출이 안 나와서…. 처남 이름으로 한 거예요.” 최 씨가 다시 물었습니다. “손님이 저렇게 많은데 폐업 직전이라는 건 무슨 소리냐. 5000만 원은 어디다 쓸 거냐.”
아들은 한참 말이 없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매출 일부는 처음부터 처남 쪽 통장으로 따로 빼 왔고, 어제 말한 5000만 원은 처남과 옆 동네에 2호점을 낼 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덧붙였습니다. “아버지, 어차피 나중에 저 물려주실 돈이잖아요. 좀 미리 쓴 것뿐이에요.”
최 씨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남의 서류는 32년 동안 그렇게 꼼꼼히 봤으면서, 정작 아들에게 건넨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선반 위에 쌓인 숯 포대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최 씨는 숨을 고르고 말했습니다. “물려줄 돈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하는 거다. 지금 여기서 차용증 써라. 1억5000만 원, 빌린 돈이라고.” 아들이 머뭇거리자 최 씨는 계산대에서 볼펜과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아들은 사돈총각이 지켜보는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금액과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최 씨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내는 한참을 울다 말했습니다. “당신 하자는 대로 해요. 이번에 덮으면 그 애가 더 망가져요.” 최 씨는 일주일 뒤 우체국에 가서 아들과 사돈총각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돈을 건넨 날짜와 금액, 아들 가게라는 말을 믿고 보냈다는 사실, 돌려받을 방법을 적었습니다. 내용증명 자체에 강제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 무엇을 요구했는지 남겨 두는 기록이 된다는 말을 법률 상담에서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은행에 갔습니다. 몇 해 전 아내가 입원했을 때 병원비 처리하라고 아들에게 맡겨 두었던 연금 통장 체크카드를 해지하고, 비밀번호와 인터넷 뱅킹을 모두 새로 바꿨습니다. 앞으로 연금은 아내와 둘이 쓸 생활비와 병원비로만 나가도록 정리했습니다.
아들에게서는 며칠 동안 전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밤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매달 조금씩 갚겠습니다.] 최 씨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첫 달 입금이 찍히는 걸 보고 나서 답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식에게 돈을 줄 때 묻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지 않는 돈은 자식을 돕기보다 무르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내줄 수 있는 건 기회까지이지, 부모의 노후까지는 아닙니다.
물려줄 재산은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부모의 것입니다. 그 선을 분명히 그어 두는 일이 매정해 보여도, 결국은 자식이 제 힘으로 서게 만드는 마지막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린 날, 최 씨는 아내와 함께 32년을 출퇴근하던 구청 앞 은행나무 길을 걸었습니다. 누렇게 떨어진 잎 위로 눈이 얇게 덮였고, 최 씨는 아내의 장갑 낀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