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7:02

“사촌오빠 대출 보증 4000만원 서줬는데..” 7년 뒤 조카 결혼식 피로연에서 알게 된 비밀

피붙이가 보증을 부탁하면 거절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릴 적 정을 생각하면 서류 한 장에 이름 쓰는 일쯤은 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증은 이름만 빌려주는 일이 아니라 남의 빚을 함께 지는 일이고, 그 무게는 오래도록 남습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 사는 한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시장 입구 골목에서 남편과 함께 28년째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다림질은 한 씨가 맡고, 바지 기장 줄이기나 단추 달기 같은 수선은 남편이 맡습니다. 아들은 이웃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고, 딸은 시집가서 아이 둘을 키웁니다.

한 씨에게 사촌오빠는 친오빠나 다름없었습니다. 큰집 장손인 사촌오빠는 한 씨보다 다섯 살 위였습니다. 장마로 개울물이 불어나면 사촌오빠는 한 씨를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오빠 등에 꽉 매달려라. 떨어지면 큰일 난다.”

한 씨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를 도맡아 치른 사람도 사촌오빠였습니다. 세탁소를 처음 열던 날에는 화분을 들고 와서 양복 두 벌을 맡기고 첫 손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뒤 사촌오빠는 건축 자재를 대는 사업을 했습니다. 명절이면 큰집 마당에 번쩍이는 승용차를 세워 집안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7년 전 봄, 사촌오빠가 세탁소에 찾아왔습니다. 스팀다리미 김이 자욱한 가게 안에서 한참 머뭇거리던 사촌오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동생아, 은행에서 보증인을 하나 더 세우라는구나. 거래처 대금만 들어오면 넉 달 안에 다 정리된다. 네 이름만 잠깐 빌려다오.”

남편은 말렸습니다. “보증은 남의 빚을 내 빚으로 떠안는 일이오.” 그러나 한 씨의 머릿속에는 징검다리 위 사촌오빠의 등이 떠올랐습니다. “오빠가 나 업고 물 건너 준 게 몇 번인데요.” 한 씨는 은행에 가서 4,000만 원 대출 보증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해 가을, 사촌오빠의 회사가 부도를 냈습니다. 사촌오빠는 연락이 끊겼고, 한 씨 앞으로 은행 독촉장이 날아왔습니다. 한 씨는 노후 자금으로 붓던 적금 1,800만 원을 깨고, 나머지는 3년 동안 가게 수입을 쪼개어 갚았습니다. 그사이 부부는 명절 하루를 빼고는 가게 문을 닫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큰집 어른들은 한 씨를 다독였습니다. “장손이 망했으니 집안이 나눠 진다고 생각해라. 고모부랑 작은집 막내도 보증 섰다가 다 물었다.” 한 씨는 서운함을 삼켰습니다. 몇 해 뒤 사촌오빠가 명절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을 때도, 오죽 힘들었으랴 싶어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올가을, 사촌오빠의 아들이 장가를 간다는 청첩장이 왔습니다. 한 씨는 남편과 함께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이웃 고을 예식장을 찾았습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이 제법 찬 시월 끝자락이었습니다. 예식이 끝나자 하객들은 길 건너 4층짜리 새 건물로 안내되었습니다. 꼭대기 층 연회장 하얀 식탁보 위에는 갈비찜과 잡채, 떡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촌오빠의 얼굴은 술기운에 불그레했습니다. “귀한 걸음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집사람 이름으로 된 이 건물에서 자리를 마련했으니 마음껏 드시고 가십시오.”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한 씨가 들고 있던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췄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한 씨는 건물 입구 벽에 박힌 머릿돌 앞에 섰습니다. 매끈한 화강암에 준공 연도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7년 전, 사촌오빠의 회사가 부도 난 바로 그해였습니다. 옆에 선 남편이 낮게 중얼거렸습니다. “망했다는 해에 건물을 올렸다는 말이오?”

그때 주차장 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큰어머니와 셋째 작은아버지였습니다. “형수님이 그 전해에 땅을 며느리 앞으로 사 두자고 한 게 신의 한 수였지요.” “쉿, 다 지난 일이다. 빚은 집안이 나눠 졌으니 그걸로 됐다.”

한 씨는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큰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부도 나기 1년 전에 땅을 사 두셨다고요?” 큰어머니는 잠시 얼굴이 하얘지더니 이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장손 하나 살리자고 한 일이다. 너는 집안 덕 본 적 없냐?” 작은아버지는 고개를 돌린 채 담배만 태웠습니다.

그날 밤 한 씨는 세탁소 뒷방에서 3년 치 은행 상환 영수증 묶음을 꺼냈습니다. 고무줄로 묶어 둔 종이 뭉치는 누렇게 바래 있었습니다. 사촌오빠는 부도 1년 전에 아내 이름으로 땅을 사 두고 회사를 일부러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보증 빚은 한 씨와 고모부, 작은집 막내에게 떠넘겼습니다. 세탁소에 찾아와 머뭇거리던 그 봄에도 사촌오빠는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집 어른 몇몇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 한 씨는 무료 법률 상담 창구를 찾았습니다. 상담원은 영수증을 한 장씩 넘겨 보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보증인이 대신 갚은 돈은 원래 빚진 사람에게 돌려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권리에는 기한이 있으니 서두르셔야 합니다. 재산을 빼돌린 일 자체를 따지는 건 시간이 많이 지나 쉽지 않을 수 있고요.”

한 씨는 상담원의 안내대로 사촌오빠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고모부와 작은집 막내에게도 머릿돌 사진과 함께 그날 들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큰집에 전화를 걸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오빠, 나 업고 물 건너 준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그런데 그 은혜를 4,000만 원에 판 건 오빠예요. 올해부터 큰집 제사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한 달 뒤, 사촌올케가 세탁소로 찾아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우선 1,000만 원이고 나머지는 다달이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일이 커지면 건물까지 시끄러워질까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한 씨는 봉투를 받아 서랍에 넣었을 뿐 차 한 잔 내놓지 않았습니다. 올케가 돌아간 뒤 남편이 말했습니다. “돈 돌려받는 것보다 당신이 마음을 정리한 게 더 다행이오.”

옛 어른들은 보증 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정이 깊은 사이일수록 보증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도장을 찍기 전에 상대의 재산과 사업 형편을 한 번만이라도 물어보세요. 묻는 일은 정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정을 지키는 일입니다.

대신 갚은 돈이 있다면 영수증과 기록을 버리지 말고 모아 두세요.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혼자 삭이지 말고 일찍 상담을 받아 보세요. 피붙이 사이의 일일수록 분명하게 매듭지어야 남은 정이라도 지킬 수 있습니다.

늦가을 어느 일요일, 한 씨는 남편과 함께 어릴 적 그 개울가를 찾았습니다. 징검다리 옆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물살에 실려 흘러갔고, 마른 갈대가 바람에 사각거렸습니다. 한 씨는 남편의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한 칸씩 건넜습니다. 이번에는 누구의 등에도 업히지 않고 자기 발로 건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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