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돈 사이는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라고들 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돕고 싶어도 체면이 걸려 말 한마디 꺼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사돈 간에 오가는 돈은 대개 자식 손을 거쳐 조용히 건너갑니다.
윤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 시장 골목 국밥집 주방에서 1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나가 사골을 고고 깍두기를 담그는 것이 윤 씨의 하루입니다. 남편은 9년 전 지병으로 먼저 떠났고, 외아들은 서른일곱으로 이웃 도시에서 회사에 다닙니다.
며느리는 서른넷으로, 다섯 살 손자를 키우며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합니다. 며느리의 친정아버지인 사돈은 일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작은 철물점을 하다 몇 해 전 가게를 접고 고향 밭을 일구며 지냅니다.
상견례 날, 사돈은 윤 씨 손등의 데인 자국을 보고 “고생 많이 하신 손입니다” 하며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혼자 아들을 키운 자신을 낮춰 보지 않는 그 한마디에, 윤 씨는 이 집이라면 아들을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사돈은 직접 기른 배추 스무 포기를 트럭에 싣고 왔습니다. 윤 씨는 그 배추로 담근 김치에 사골 국물 한 통을 얹어 돌려보냈습니다. 손자 돌잔치 날에는 사돈이 “사부인 먼저 드십시오” 하며 상석을 내주었습니다.
2년 전 가을, 사돈이 밭일을 하다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습니다. 큰 병원에서 심장 혈관이 여러 군데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고, 서둘러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강보험이 된다지만 입원이 길어지고 간병인까지 써야 해 목돈이 들었습니다.
사돈댁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가게를 정리하며 남은 돈은 빚을 갚는 데 들어갔고, 처남은 막 회사를 그만둔 참이었습니다. 국밥집 뒷문으로 찾아온 아들이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장인어른 수술비가 1500만원쯤 모자란대요. 우리도 대출 이자 때문에 빠듯하고요.”
윤 씨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통장에는 주방 일로 번 돈을 다달이 부어 온 적금이 있었습니다. 무릎이 더 나빠지면 수술받으려고,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모아 둔 돈이었습니다.
“사돈어른이 우리한테 해 준 게 얼만데. 사람 목숨이 먼저다.” 윤 씨는 다음 날 적금을 깨 1500만원을 아들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사돈어른 체면 상하지 않게 우리 집에서 드리는 거라고만 해라. 내 이름 크게 내지 말고.”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퇴원 무렵 손자를 데리고 온 며느리가 윤 씨의 휴대전화 글씨를 키워 주다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윤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사돈에게서는 “사부인, 보내 주신 국물 잘 먹었습니다”라는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그 뒤 2년 동안 아들은 처가에 부쩍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명절이면 처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윤 씨 집에는 저녁 늦게 얼굴만 비쳤습니다. 어느 날은 새 승용차를 몰고 와 “장인어른이 타라고 뽑아 주셨어요” 하며 웃었습니다.
윤 씨는 의아했습니다. 수술비도 빠듯하던 사돈댁이 차를 사 줄 형편이 되나 싶었습니다. 며느리는 그 무렵부터 윤 씨를 볼 때마다 무언가 말하려다 삼키는 얼굴이었습니다. 윤 씨는 아들 내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만 했습니다.
올해 10월 마지막 토요일, 사돈댁이 새집 집들이를 열었습니다. 밭 일부를 팔고 처남이 보태 마련한 작은 아파트였습니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고, 윤 씨는 새벽에 끓인 사골 국물 두 통과 총각김치를 들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거실에는 친척 스무 명 가까이가 모여 있었습니다. 상 위에는 갈비찜과 잡채가 놓였고, 베란다 유리창에는 젖은 은행잎이 노랗게 붙어 있었습니다. 현관 신발장 위에는 아들의 차 열쇠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돈이 술잔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셔츠 깃 사이로 수술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건 다 우리 사위 덕입니다. 2년 전에 이 사람이 적금 깨서 수술비 1500만원을 내줬어요. 우리 사위가 살려 준 목숨입니다.”
친척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사돈의 손위 동서가 “요즘 그런 사위가 어디 있나” 하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사돈이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모아 둔 돈 털어 차 한 대 뽑아 줬지요. 그걸로도 다 못 갚아요.”
윤 씨는 수저를 든 채 굳었습니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잔만 만지작거렸습니다. 윤 씨는 사돈의 기쁜 날을 망칠 수 없어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그때 부엌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며느리가 젖은 손으로 거실에 나와 섰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아버지, 그 돈 이 사람 돈 아니에요. 어머님 돈이에요.” 거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며느리는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어머님 휴대전화 글씨 키워 드리다가 은행 문자를 봤어요. 적금 해지, 그리고 이 사람 통장으로 1500만원. 국밥집 주방에서 12년 모으신 돈이에요. 2년 동안 그 말을 못 해서 어머님 얼굴을 제대로 못 봤어요.”
사돈의 손에서 술잔이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자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들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집에서 드리는 거라고 하려 했는데… 장인어른이 제 손을 잡고 우시니까 그만…” 친척들 사이로 낮은 한숨이 번졌습니다.
사돈이 비틀거리며 윤 씨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습니다. 윤 씨가 얼른 그 팔을 붙들었습니다. “사돈어른, 수술하신 몸으로 이러지 마세요. 사돈어른 이렇게 살아 계시니 그 돈은 제 할 일 다 했습니다.”
윤 씨는 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지 않았습니다. “돈 심부름한 건 고맙다. 하지만 그 돈으로 네 체면을 산 건 잘못이다. 차 열쇠는 오늘 장인어른께 돌려드려라.”
아들은 신발장 위 열쇠를 가져와 장인 앞에 내려놓고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인어른, 죄송합니다. 엄마, 죄송해요.” 윤 씨는 품에 안겨 우는 며느리의 등을 쓸며 “혼자 속 끓였구나” 하고 달랬습니다.
며칠 뒤 사돈이 국밥집으로 찾아와 차를 판 돈이라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윤 씨는 받지 않고 국밥 한 그릇을 말아 내었습니다. “그 돈은 손자 대학 갈 때 쓰세요. 할아버지가 살아서 주는 게 제일 큰 선물입니다.”
아들은 그 뒤로 매달 첫 주말마다 국밥집에 와 문 닫을 때까지 설거지를 거들었습니다. 윤 씨는 말리지 않았습니다. 거짓으로 받은 대접은 땀으로 갚는 것이 맞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건넬 때 우리는 흔히 이름은 빼고 마음만 보내자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은 귀하지만, 누구의 돈인지 흐려지면 그 틈으로 엉뚱한 공치사가 끼어들기 쉽습니다. 큰돈일수록 받는 쪽이 분명히 알게 전하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꺼낸 사람을 탓하기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홀로 속을 끓였는지 먼저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첫눈이 내린 날, 사돈은 남은 밭에서 기른 배추 스무 포기를 싣고 국밥집 뒷문에 섰습니다. 윤 씨와 사돈, 며느리는 김이 오르는 사골 솥 옆에 둘러앉아 배추를 절였고, 세 사람의 손이 소금물에 빨갛게 얼어 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