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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살림부터 줄이게 된다. 넓은 집을 정리하고, 옷장을 비우고, 쓰지 않는 물건을 하나둘 내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사람도 같이 정리하고 있다. 모임은 귀찮아지고, 연락은 미뤄지고, 먼저 전화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 홀가분해진 것 같은데 저녁이 되면 집 안이 유난히 조용하게 느껴진다.
숭실사이버대 교수이자 노년상담가인 이호선은 『이호선의 나이 들수록』(관계편)에서 “나이 들수록 모든 걸 줄여도 관계만큼은 줄이지 말아야 한다”고 적었다. 짐은 덜어낼수록 가벼워지지만, 사람은 덜어낼수록 삶이 비어 간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끝까지 붙들어야 할 인연이 어떤 것인지 하나씩 짚어볼 수 있다.
4위 – 가까운 이웃
매일 마주치는 이웃은 가장 쉽게 잊히는 인연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목례만 나누고 이름도 모른 채 몇 년을 지내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닿을 수 있는 사람은 멀리 사는 가족이 아니라 바로 옆집 사람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인사 한마디, 반찬 한 접시가 오가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 작은 왕래가 쌓이면 사는 동네가 그저 주소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곳이 된다.
3위 – 오래된 친구
젊은 시절의 친구는 각자 일과 가정에 바빠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다시 연락하려 해도 어색함이 앞서서 결국 그대로 둔다. 그렇게 미루는 사이 부고 문자로 소식을 듣게 되는 일이 생긴다.
오래된 친구는 지금의 나를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나온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다. 직함도 재산도 상관없이 예전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삶은 한결 덜 외롭다. 이런 관계는 새로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귀하다.
2위 – 형제자매
형제자매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오히려 멀어지기 쉽다. 부모라는 구심점이 사라지고, 유산이나 서운했던 기억이 그 자리를 채운다. 명절에도 얼굴을 보지 않게 되면 피를 나눈 사이라도 남보다 멀어진다.
그래도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은 형제자매뿐이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 증언해줄 사람이 사라지면 내 삶의 한 부분도 같이 흐려진다. 섭섭한 일이 있었더라도 끊기보다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이어가는 쪽이 결국 덜 후회스럽다.
1위 – 곁을 지켜온 배우자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소홀해지기 쉽다. 오래 함께 산 부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정말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각자 다른 방에서 각자의 하루를 보내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자녀가 떠나고 일터에서 물러난 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낼 사람은 결국 배우자다. 이 관계가 메말라 있으면 남은 시간 전체가 메마른다. 이호선의 말처럼 관계를 줄이지 말아야 한다면, 그 첫 자리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어지기 쉬운 이 사람이어야 한다.
인연을 지킨다는 것이 대단한 결심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텔레비전을 잠시 끄고 배우자에게 “오늘 하루 어땠어?” 하고 한 번 묻는 것이면 된다. 대답이 짧아도 괜찮다. 그 질문 하나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대화의 문을 다시 여는 시작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