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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집을 줄여 옮기려는 사람들은 대개 시세표부터 펼친다. 얼마에 팔고 얼마에 들어가 차액이 얼마 남는지가 머릿속을 먼저 채운다.
그런데 이사하고 몇 해가 지나 후회를 털어놓는 이들은 값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운전대를 놓은 뒤에야 보이는 조건들이 있다. 그 조건들을 덜 급한 것부터 차례로 짚어 본다.
4위. 관리비와 겨울 난방비
넓은 거실과 높은 천장은 보기에 시원하다. 그러나 연금으로 사는 살림에서는 매달 빠져나가는 관리비가 집값보다 오래, 꾸준히 무게를 더한다.
겨울이 특히 그렇다. 추위를 더 타는 나이에 난방비가 무서워 보일러를 아끼면 몸이 상한다. 계약 전에 지난겨울 고지서를 보여 달라고 청하는 것은 쩨쩨한 일이 아니다.
3위. 대중교통과 장보기
지금은 차를 몰고 큰 마트에 간다. 하지만 언젠가 차 열쇠를 내려놓는 날이 온다. 그때는 집 앞 버스 정류장 하나가 바깥세상과 이어진 끈이 된다.
두부 한 모, 파 한 단을 사러 걸어갈 가게가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장 본 것을 손에 들고 올 만한 거리에 시장이 있으면 장보기가 곧 산책이 되고 이웃과 눈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된다.
2위. 걸어서 닿는 병원과 약국
나이 들수록 병원은 특별한 날 가는 곳이 아니라 달력에 적어 두고 다니는 곳이 된다. 혈압약을 타러, 무릎 주사를 맞으러 드나드는 길이 멀면 진료를 하루 이틀 미루게 된다.
그러니 집을 보러 간 날 내과와 약국까지 직접 걸어 보는 것이 좋다. 지도에 찍힌 거리보다 내 걸음으로 잰 시간이 정확하다. 비 오는 날과 눈 온 날을 떠올려 보면 더 그렇다.
1위. 엘리베이터와 계단, 문턱 하나
아무리 가까운 병원도, 아무리 좋은 시장도 현관을 나서야 닿는다. 엘리베이터 없는 3층, 단지 입구의 가파른 비탈, 공동현관 앞 몇 칸의 계단은 젊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릎 하나가 탈이 나면 그 몇 칸이 집과 세상 사이의 벽이 된다. 나서기가 번거로워지면 사람은 조금씩 집 안에 머물게 된다. 보행기가 지나갈 경사로가 있는지, 집 안에 걸려 넘어질 문턱이 많은지까지 살핀 사람이 오래 제 발로 다닌다.
노후의 집은 자산이기 전에 하루하루를 건너는 다리다. 값이 오를 집보다 늙어서도 혼자 드나들 수 있는 집이 후회를 덜 남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현관에서 약국까지, 정류장까지 한 번 걸어 보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