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06:15

“딸 대신 손녀 키워 줬는데..” 피아노 발표회 날 드러난 딸 부부의 민낯

맞벌이하는 자식을 보면 부모는 손주라도 대신 봐 주고 싶어집니다. 내 몸이 고단해도 자식 내외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돈 한 푼 받지 않고 쏟은 그 정성에 다른 자리에서 값이 매겨지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 사는 권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스물다섯 해 동안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다 예순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남편은 농기계 수리점에서 일하다 몇 해 전 은퇴했고, 부부에게는 외동딸 하나가 있습니다. 딸은 같은 도시에서 사위와 함께 맞벌이를 합니다.

급식실 일은 새벽 여섯 시 반에 시작됐습니다. 아이들 육백 명이 먹을 국을 커다란 솥에 끓이고, 무거운 식판 수레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밀었습니다. 여름이면 조리복이 땀에 젖어 등에 들러붙었습니다. 권 씨는 그렇게 번 돈으로 딸을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6년 전 봄, 딸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돌을 막 지난 손녀를 안은 딸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어린이집은 아직 못 보내겠어. 엄마가 좀 봐 주면 안 될까? 우리가 매달 얼마씩 드릴게.” 권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돈은 무슨 돈이냐. 내 손녀 내가 보는데. 너희나 부지런히 벌어서 집 장만해라.”

그날부터 권 씨의 하루는 손녀에게 맞춰졌습니다. 아침 일곱 시면 딸이 손녀를 맡기고 출근했고, 밤 여덟 시가 넘어야 데리러 왔습니다. 권 씨는 급식실 솜씨로 소고기를 곱게 다지고 애호박을 쪄서 체에 내려 이유식을 끓였습니다. 손목이 시큰거렸지만 손녀가 숟가락을 받아먹는 모습에 아픈 줄도 몰랐습니다.

두 돌 무렵에는 손녀가 한밤중에 열이 올라 경기를 했습니다. 딸 내외는 출장 중이었습니다. 권 씨는 손녀를 들쳐 업고 남편과 택시를 잡아 응급실로 달렸고, 새벽까지 물수건을 갈아 얹으며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손녀가 다섯 살 되던 해에는 동네 상가에 피아노 학원이 생겼습니다. 손녀가 유리창 너머 피아노를 한참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권 씨는 자기 연금에서 학원비를 냈습니다. 딸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6년이 흘렀습니다. 권 씨의 무릎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거렸고, 남편은 “당신도 이제 좀 쉬어야지” 하며 걱정했습니다. 그사이 딸네는 새 차를 뽑았고 여름마다 해외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딸은 만날 때마다 “요즘 대출 이자 때문에 너무 빠듯해”라고 했습니다. 권 씨는 조금 서운했지만 젊은 사람들 살림이 다 그렇겠거니 넘겼습니다.

올가을,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손녀가 첫 피아노 발표회에 나갔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권 씨는 꽃집에 들러 안개꽃과 분홍 장미를 섞은 꽃다발을 샀습니다. 시내 작은 공연장에는 차로 한 시간 넘는 곳에 사는 사돈 내외도 와 있었습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손녀가 무대에 올라 ‘작은 별’을 쳤습니다. 마지막 건반을 누르고 손녀가 꾸벅 인사할 때, 권 씨는 누구보다 크게 손뼉을 쳤습니다. 이유식을 받아먹던 아기가 저렇게 컸다는 생각에 눈가가 뜨거워졌습니다.

발표회가 끝나고 양가 식구는 근처 한정식집에 둘러앉았습니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습니다. 갈비찜과 잡채가 상에 오르자 바깥사돈이 잔을 들었습니다. “안사돈, 그동안 손녀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해 드린 게 없어 늘 마음에 걸렸는데, 그래도 매달 백만 원씩 수고비 보내 드린 거 잘 쓰셨지요?”

권 씨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안사돈이 웃으며 거들었습니다. “아범이 장모님께 꼬박꼬박 전해 드린다고 해서 저희도 마음이 놓였어요. 그게 어디 수고에 비하겠어요.”

식탁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사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숙였습니다. 권 씨는 딸을 바라보았습니다. 딸은 엄마의 눈을 피한 채 물잔만 만지작거리다 작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건 나중에 따로 얘기해.” 그 순간 권 씨는 알았습니다. 딸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권 씨는 옆자리에서 갈비를 뜯는 손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습니다. 권 씨는 숨을 고르고 말했습니다. “사돈어른,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손녀 보는 일에 값을 매긴 적도 없고요.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바깥사돈의 얼굴이 굳었고, 식사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틀 뒤 딸이 혼자 찾아와 현관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처음엔 엄마가 어차피 안 받을 테니까 모아 뒀다가 나중에 목돈으로 드리자고 했어. 그런데 이자 내고 차 할부 내다 보니 그냥 생활비가 돼 버렸어.” 6년 동안 매달 백만 원, 모두 7,200만 원이었습니다. 사위는 장모님 수고비라며 제 부모에게 돈을 받아 갔고, 딸은 그것을 알면서도 엄마 앞에서는 빠듯하다고만 했던 것입니다.

권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는 그 돈 필요 없다. 그런데 그건 내 이름을 팔아서 받은 돈이다. 사돈어른들은 6년 내내 내가 그 돈을 받아 쓰는 줄 아셨을 거다. 너희 둘이 가서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어떻게 갚을지도 직접 정해라.” 곁에서 남편이 덧붙였습니다. “손녀는 우리가 계속 봐 주마.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냐.”

그 주말, 딸 부부는 사돈댁에 가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며칠 뒤 안사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안사돈, 자식 잘못 키운 저희가 면목이 없습니다.” 권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딸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우리 둘 다 이제라도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날 저녁, 손녀가 두고 간 가방에서 쪽지 한 장이 나왔습니다. [할머니 발표회 와 줘서 고마워요. 할머니 박수가 제일 컸어요.] 권 씨는 쪽지를 냉장고 문에 붙여 두었습니다.

가족 사이의 정은 값을 매기지 않을 때 가장 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정에 몰래 값을 매기고 이름을 빌려 쓰기 시작하면, 정은 금세 거짓이 됩니다. 자식을 위한 수고라도 어떤 이름으로, 누구를 거쳐 오가는지는 한 번쯤 살펴야 합니다.

자식의 잘못을 덮어 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일을 스스로 바로잡게 하는 것이 부모가 끝까지 해야 할 가르침입니다.

늦가을 어느 오후, 권 씨는 학교를 마친 손녀의 손을 잡고 강변 둑길을 걸었습니다. 은행잎이 수북이 떨어져 발밑에서 바스락거렸습니다. 손녀는 ‘작은 별’을 흥얼거리며 앞서 뛰어갔고, 권 씨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OWN 뉴스

당신의 뉴스를 담습니다. 오늘의 건강부터 내일의 노후까지, 꼭 필요한 생활 정보를 전합니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