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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쯤은 있습니다. 상대가 걱정할까 봐, 혹은 내 체면이 무너질까 봐 혼자 삼킨 비밀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을 지켜 준 사람이 곁에 있던 배우자였다는 사실은 대개 너무 늦게 알게 됩니다.
장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전라도 바닷가 소도시의 오래된 단층집에서 삽니다. 스물셋에 시집와 40년 동안 살림만 해 온 전업주부입니다. 남편은 시외버스를 30년 몰다 정년퇴직했고, 2년 전 겨울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가한 큰딸은 이웃 도시에 살고,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장 씨에게는 남편도 모르는 통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물여섯 무렵부터 시장에서 콩나물값을 아끼고, 겨울마다 동네 김장을 거들어 받은 품삯을 조금씩 넣은 통장이었습니다. 30년 동안 모은 돈이 2600만 원이었습니다. 장 씨는 그 통장을 비닐에 싸서 쌀통 밑에 숨겨 두었습니다.
남편은 말수가 적고 고지식한 사람이었습니다. 돈 문제에는 유독 엄해서, 아이들이 용돈을 더 달라고 하면 “버는 만큼 쓰는 거다” 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낙이라고는 주말 밤낚시 하나였습니다. 남편은 낚시 가방만큼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늘이 많아서 찔린다. 거긴 열지 마라.”
7년 전 봄, 밤늦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차린 인터넷 옷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카드빚이 불어났다고 했습니다. 돌려막기로 버티다 더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엄마, 2500만 원이에요. 아버지한테는 제발 말하지 마세요.”
장 씨는 수화기를 쥔 채 안방 쪽을 돌아보았습니다. 남편이 알면 아들과 크게 부딪칠 것이 뻔했습니다. “걱정 마라. 엄마가 어떻게 해 볼게. 대신 다시는 카드 함부로 쓰지 마라.” 다음 날 장 씨는 쌀통 밑 통장을 꺼내 은행으로 갔습니다. 해지 서류에 도장을 찍는 손이 떨렸습니다. 통장에는 100만 원만 남았습니다.
그날 저녁 장 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남편 밥상에 된장찌개를 올렸습니다. 남편은 숟가락을 들다 말고 장 씨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당신, 오늘 어디 아픈가?” 장 씨는 “장 보느라 좀 걸었더니 그래요”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그 뒤로 남편의 밤낚시가 부쩍 잦아졌습니다. 토요일 저녁이면 가방을 메고 나가 일요일 새벽에야 들어왔고, 금요일에 나가는 날도 생겼습니다. 장 씨는 예순 넘은 사람이 밤바람을 맞는 게 걱정되어 몇 번 말렸습니다. “여보, 그 나이에 무슨 밤낚시를 그렇게 다녀요.” 남편은 “방파제가 집보다 편하다” 하며 웃기만 했습니다.
이상한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의 손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았고, 빈손으로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쩌다 우럭 몇 마리를 들고 오면 어시장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습니다. 장 씨는 “오늘도 공쳤네” 하는 남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남편은 2년 전 겨울, 새벽 목욕탕에 갔다가 쓰러졌습니다. 심근경색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장 씨는 남편 방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옷장 문을 열면 남편 냄새가 나서 그대로 닫곤 했습니다. 베란다 구석의 낚시 가방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두 해를 났습니다.
지난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일요일에 큰딸이 왔습니다. “엄마, 이제 아버지 물건 정리해요. 이대로 두면 엄마가 더 힘들어요.” 두 사람은 옷가지를 상자에 담고, 낡은 구두와 버스회사 근속 기념패는 닦아서 따로 챙겼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낚시 가방이었습니다.
큰딸이 지퍼를 열자 낚싯대 대신 노란 고무줄로 묶인 누런 봉투 뭉치가 나왔습니다. 맨 위 봉투에는 남편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집사람 비상금 채우기.’ 장 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봉투는 모두 예순 장이었습니다. 겉면마다 날짜와 금액, 그리고 같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첫 봉투의 날짜는 장 씨가 통장을 해지한 바로 그달이었습니다. 큰딸이 떨리는 손으로 돈을 세었습니다. “엄마, 2500만 원이에요. 딱 2500만 원.”
봉투 사이에서 구겨진 명함 한 장이 떨어졌습니다. 대리운전 업체 명함이었습니다. 장 씨는 그날 저녁 명함 속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업체를 하는 최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형님이 5년 동안 주말마다 나오셨어요. 버스 30년 몰던 솜씨라 손님들이 형님만 찾았지요. 집에는 꼭 낚시 간다고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봉투는 다른 봉투보다 얇았습니다. 날짜는 남편이 쓰러지기 두 달 전이었고, 겉에는 한 줄만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 돈은 당신 것.’ 장 씨는 그 봉투를 가슴에 대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며칠 뒤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봉투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엄마, 아버지는 그때 다 아셨어요. 빚 갚고 며칠 뒤에 저를 부르셨어요. 엄마가 평생 모은 돈이니 당신이 채워 놓겠다고, 엄마 자존심 상하니 절대 안다고 하지 말라고요.”
장 씨는 그제야 그날 밥상에서 자기 얼굴을 오래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을 떠올렸습니다. 남편은 쌀통 밑 통장을 진작 알고 있었고, 그 통장이 빈 날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 돈, 이제 제가 갚을게요.” 장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다. 이건 네 아버지가 나한테 준 거다.”
장 씨는 돈을 새로 만든 자기 이름 통장에 넣었습니다. 빈 봉투 예순 장은 고무줄로 다시 묶어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고, 통장 첫 장에는 남편의 마지막 한 줄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옛이야기 『의좋은 형제』에서 형과 아우는 서로의 살림을 걱정해 밤마다 몰래 볏단을 날라다 줍니다. 아무리 날라도 볏단이 줄지 않는 까닭을, 두 사람은 어느 달밤 길 한가운데서 마주치고서야 알게 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숨긴 일이 있다면, 그 사람도 이미 알고 묵묵히 견뎌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늦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 보세요. “그때 고마웠어요”라는 한마디는 곁에 있을 때 해야 닿습니다.
올가을 장 씨는 아들과 함께 바닷가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남편이 낚시하러 간다던 그 방파제였습니다. 늦은 오후 햇살이 잔잔한 물결 위에 은빛으로 흩어졌고, 갈매기 몇 마리가 등대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장 씨는 방파제 끝에 한참 서 있다가, 해가 질 무렵 아들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 돌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