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09:26

“큰아들 집에 반찬 싸 날랐는데..” 칠순날 아들이 들고 온 반찬통에 펑펑 울었다

자식이 제 살림을 꾸리는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 손은 좀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냉장고는 비어 있지 않은지 걱정하며 반찬통을 채우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사랑을 말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반찬통을 거절당하는 날, 어머니 마음은 그릇처럼 와르르 무너집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 사는 윤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서른 살에 시장 골목 끝에 여섯 평짜리 국숫집을 열어 40년 동안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말았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멸치 육수를 우렸고, 밤 아홉 시가 넘어야 셔터를 내렸습니다. 남편은 10년 전에 먼저 떠났고, 윤 씨는 6년 전 가게를 접었습니다. 자식은 큰아들과 작은아들, 막내딸 셋입니다.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가게 일을 거들었습니다. 중학생 때 국수 쟁반을 들고 2층 미용실 계단을 오르다 엎어져 손등을 데었는데도 울지 않았습니다. “엄마, 다시 말아 줘. 내가 또 갖다 줄게.” 윤 씨는 그날 밤 아들 손등에 화상 연고를 바르며 혼자 울었습니다.

그런 큰아들이 5년 전 이혼을 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야간 일을 하던 아들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빌라 꼭대기 집으로 혼자 옮겨 갔습니다. 처음 그 집에 가 본 날, 윤 씨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말을 잃었습니다. 생수 두 병과 소주 세 병, 그리고 바닥에 컵라면 상자가 전부였습니다.

그 주부터 윤 씨는 매주 화요일 시장을 돌았습니다. 장조림, 멸치볶음, 깻잎지, 콩자반, 무생채에 철 따라 오이소박이나 김치를 더해 대여섯 가지를 쌌습니다. 연금과 가게를 넘기며 받은 돈을 아껴 장을 봤지만, 윤 씨에게는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엄마, 힘들게 뭘 이렇게 많이 해 와.”
“네 입에 들어가는 게 내 낙이다. 잔말 말고 먹어.”

반찬 보자기를 들고 4층까지 오르는 데 처음에는 3분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3년, 4년이 지나자 2층에서 한 번, 3층에서 또 한 번 쉬어야 했습니다. 40년 동안 국숫집 바닥에 서서 버틴 무릎이 결국 탈이 난 것입니다. 정형외과 의사는 연골이 거의 닳았다며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고, 수술 날짜는 작년 가을로 잡혔습니다.

수술을 2주 앞둔 화요일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윤 씨는 한 손에 우산을, 한 손에 반찬 보자기를 들고 젖은 계단을 한 칸씩 올랐습니다. 3층 난간을 붙잡고 숨을 고르는데, 위에서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아들은 엄마 얼굴이 아니라 보자기부터 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듣는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제 오지 마세요! 냉장고에서 다 썩어 나가요. 버리는 것도 일이라고요!”

윤 씨는 그 자리에 굳었습니다. “썩어 나가? 내가 해 온 걸 다 버렸다는 거냐?” 아들은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습니다. 윤 씨는 보자기를 계단에 내려놓고 돌아섰습니다. 내려오는 내내 무릎보다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그 뒤로 1년 동안 모자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윤 씨는 막내딸 손을 잡고 수술을 받았고, 석 달 동안 재활을 했습니다. 큰아들에게서 온 것은 수술 날 아침 “잘 받으세요”라는 짧은 문자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올가을에는 칠순 잔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족 대화방에서 비용 이야기가 시작되자 금세 말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작은아들은 셋이 똑같이 나누자고 했고, 막내딸은 사정 따라 내자고 했습니다. 큰아들은 끝내 대답이 없었습니다. “형은 엄마 칠순에도 입을 닫네.” 작은아들의 그 한마디 끝에 잔치는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칠순날, 윤 씨는 혼자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상에는 미역국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만 올랐습니다. 해가 지고 창밖이 어두워질 무렵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 앞에는 큰아들이 낡은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보자기를 풀자 윤 씨는 숨을 멈췄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아들 집에 두고 온 자기 반찬통들이었습니다. 뚜껑마다 윤 씨가 매직으로 써 둔 ‘장조림’, ‘깻잎’ 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안에 낯선 반찬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엄마, 이거 제가 만든 거예요. 1년 동안 주말마다 한식 조리 학원에 다녔어요. 엄마 장조림 맛이 안 나서 열한 번을 다시 했어요.”

아들은 마지막으로 꽁꽁 언 작은 통 하나를 꺼냈습니다. 뚜껑에는 아들 글씨로 작년 가을 날짜와 함께 ‘엄마 장조림, 마지막’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썩어 나간다는 거 거짓말이었어요. 다 냉동실에 날짜 써서 넣어 두고 아껴 먹었어요. 그날 창문으로 엄마가 3층 난간 붙잡고 서 있는 걸 봤어요. 수술 날짜까지 잡아 놓고 저 계단을 또 오르는데… 그냥 오지 말라고 하면 엄마는 또 올 거잖아요. 그래서 모질게 말했어요.”

아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수술하던 날도 병원 1층까지 갔다가 그냥 왔어요. 엄마 얼굴 보면 다 말해 버릴 것 같아서요. 칠순 잔치 돈 얘기에 대답 못 한 것도, 오늘 이걸 제 손으로 차려 드리고 싶어서였어요.”

윤 씨는 장조림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습니다. 간장이 조금 셌지만, 분명히 자기 손맛을 흉내 낸 맛이었습니다. 윤 씨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들 등을 끌어안은 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날 밤 아들은 엄마 부엌에서 멸치 육수를 우려 잔치국수를 말았습니다. 학원에서는 안 가르쳐 줘서, 어릴 적 가게 부엌에서 본 대로 했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작은아들과 막내딸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작은아들은 형 손을 잡고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늦은 칠순상은 큰아들이 만든 반찬으로 다시 차려졌습니다.

자식이 모진 말로 등을 돌릴 때, 그 말이 전부라고 믿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걱정이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수록 한 번만 더 자식의 눈을 들여다봐 주세요.

주는 사랑만 사랑이 아닙니다. 받는 쪽도 그 마음을 오래, 소중하게 품고 있다가 언젠가 제 방식으로 돌려줍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린 화요일, 윤 씨 집 현관 앞에 반찬 보자기 하나가 놓였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들고 오는 보자기입니다. 윤 씨는 수술한 무릎으로 천천히 현관까지 걸어 나가, 눈 쌓인 골목을 걸어오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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