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09:33

“형 사업 빚 3억 갚아줬는데..” 조카 결혼식장에서 드러난 온 집안의 민낯

형제는 한 핏줄이라 어려울 때 서로 기대는 게 당연하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형이 도장 하나만 찍어 달라고 하면 동생은 서류를 끝까지 읽지도 않고 이름을 씁니다. 그런데 그 도장 하나가 한 집 살림을 통째로 삼키고, 형제 사이를 영영 갈라놓기도 합니다.

임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서 택시 운전대를 잡은 지 서른두 해가 되었습니다. 회사 택시를 열세 해 몰아 무사고 경력을 채우고 개인택시 면허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도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나섰습니다. 아내는 동네 반찬가게 일을 거들고, 딸 둘은 모두 시집을 갔습니다.

임 씨는 사 남매 가운데 둘째입니다. 위로 세 살 많은 형이 있고, 아래로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로 형이 집안의 기둥 노릇을 했습니다. 임 씨가 고등학교 등록금을 못 내 울던 해, 공장에 다니던 형은 첫 월급 봉투를 뜯지도 않고 통째로 내밀었습니다.

임 씨가 군대에 가던 날 형은 훈련소 앞까지 따라와 담배 한 갑을 쥐여 주었습니다. “막히는 일 있으면 형한테 말해라. 형이 다 막아 줄게.” 그 말은 임 씨에게 평생 든든한 울타리였습니다.

형은 마흔 무렵 자동차 부품 공장을 차렸습니다. 열한 해 전 봄, 형이 서류 봉투를 들고 임 씨 집에 찾아왔습니다. “기계 들이는 데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보증인이 있어야 한단다. 이자 한 번 밀리는 일 없을 거다.” 임 씨는 형이 막아 주던 날들을 떠올리며 연대보증란에 이름을 썼습니다.

삼 년 뒤 큰 거래처가 끊기면서 형의 공장은 부도가 났습니다. 독촉장은 보증인인 임 씨 앞으로 날아왔습니다. 갚아야 할 돈은 3억이었습니다. 임 씨 부부는 스무 해 동안 적금 붓고 대출 갚아 마련한 서른두 평 아파트를 내놓았습니다.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는 방 두 칸짜리 빌라 전세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이삿날 아내는 텅 빈 거실에 주저앉아 오래 울었습니다.

형은 “나도 빈털터리가 됐다”며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고 면책을 받았습니다. 임 씨가 대신 갚은 돈을 형에게 돌려받을 길도 그렇게 막혔습니다. “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형은 도리어 소리쳤습니다. “너만 힘드냐. 나는 다 잃었다.” 그날 크게 다툰 뒤로 임 씨는 명절에도 본가에 발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흘렀습니다. 임 씨는 하루 열네 시간씩 운전했습니다. 형이 빈손이 되었으니 어머니 생활비 월 50만 원도 임 씨가 혼자 보냈습니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운전대를 잡으면서도 ‘형도 어디서 고생하겠지’ 하며 마음을 눌렀습니다.

올가을 형의 외아들이 장가를 간다는 청첩장이 왔습니다. 막내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작은형, 조카 결혼식인데 얼굴은 비춰야지. 엄마도 기다려.” 임 씨는 조카에게는 죄가 없다는 생각으로 옷장 깊숙이 넣어 둔 양복을 꺼냈습니다.

결혼식 날은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웨딩홀 로비에는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임 씨는 축의금 봉투에 50만 원을 넣었습니다. 8년 만에 본 형은 반듯한 새 양복 차림이었고, 형수 손목에서는 금시계가 반짝였습니다. 형은 임 씨를 보고 멈칫하더니 “왔냐” 한마디만 하고 돌아섰습니다.

식이 시작되자 사회자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신랑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신혼집 아파트에서 새 출발을 합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가 터지는데 임 씨는 들었던 손을 무릎 위로 내렸습니다.

축사는 형수의 큰오빠가 맡았습니다. “우리 매제가 한때 고생 많이 했지요. 그래도 우리 동생 명의로 된 상가에서 월세가 꼬박꼬박 나오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하객들은 웃었지만 임 씨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피로연장에서 임 씨가 막내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너, 알고 있었냐.” 막내는 눈을 피했습니다. “작은형, 그 상가는 부도나기 전에 형수 앞으로 돌려 놓은 거야. 엄마도 누나도 다 알아. 작은형이 알면 집안 시끄러워진다고 다들 입 다문 거야.”

옆자리 여동생이 울먹였습니다.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랬어. 큰오빠 잘못될까 봐.” 어머니는 임 씨 손을 잡았습니다. “얘야, 다 지난 일이다. 형제끼리 원수 져서 뭐 하냐.” 임 씨는 어머니 손을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엄마, 8년 동안 제가 부친 생활비 받으시면서 무슨 생각 하셨어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임 씨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신랑인 조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잘 살아라. 너는 아무 잘못 없다.” 그러고는 빗속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며칠 뒤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일하는 고향 친구 최 씨를 찾아갔습니다. “재산을 빼돌렸어도 따질 수 있는 기간이 이미 지났네. 법으로 되찾기는 어렵겠어.” 임 씨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밤 임 씨는 형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 3억 돌려 달라는 말은 안 하겠소. 법으로는 형이 이겼으니까. 다만 이제부터 어머니 생활비는 형이 맡으시오. 나는 8년 동안 형 몫까지 했소. 동생 노릇은 여기까지요.] 형제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도 조용히 나왔습니다.

임 씨는 아내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당신한테 제일 미안하오.” 아내는 남편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우리 둘만 생각하고 살아요.” 어머니에게 부치던 50만 원은 그달부터 부부의 여행 적금이 되었습니다.

『흥부전』의 놀부는 재산을 혼자 차지하고도 동생을 내쫓았습니다. 하지만 놀부의 욕심보다 더 아픈 것은 그 곁에서 모른 척한 사람들의 침묵일지 모릅니다. 진실을 덮어 지킨 화목은 결국 한 사람의 희생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이의 보증은 정이 아니라 내 식구의 살림을 거는 일입니다. 그리고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소리치는 대신 조용히 선을 긋는 것, 그것이 남은 삶을 지키는 길입니다.

늦가을 해 질 녘, 임 씨는 손님을 내려 준 뒤 동네 저수지 둑길에 택시를 세웠습니다. 기다리던 아내가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습니다. 두 사람은 물 위로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김이 오르는 보리차를 나눠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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