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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다 보면 위아래 집 사이에 오가는 것이 소리뿐일 때가 많습니다. 얼굴은 몰라도 발소리는 압니다. 그 소리 때문에 이웃이 원수가 되기도 하지만, 소리 너머의 사정을 알게 되면 남이 남이 아니게 되기도 합니다.
윤 씨는 올해 쉰일곱입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 3층에서 스무 해 넘게 살았습니다. 법인택시를 10년 몰다가 개인택시 면허를 받아 15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습니다. 아내는 동네 반찬가게에서 일하고, 외동딸은 몇 해 전 시집가 지방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윤 씨는 새벽 네 시에 일을 나가기 때문에 밤 열 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7년 전 봄, 4층에 젊은 엄마와 아들이 이사를 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아홉 살 남짓한 아이는 발목을 단단히 감싸는 보조 신발을 신고 엄마 손에 매달리듯 걷고 있었습니다. 엄마 한 씨는 고개만 꾸벅 숙였고, 윤 씨도 목례만 하고 지나쳤습니다.
그 무렵부터 밤마다 천장이 울렸습니다. 열 시가 넘으면 쿵, 쿵 바닥을 딛는 소리가 한 시간 넘게 이어졌습니다. 잠이 모자란 채 운전대를 잡다가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르고 뒤차에 경적을 들은 날도 있었습니다.
보름째 되던 밤, 윤 씨는 결국 슬리퍼를 꿰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땀에 젖은 한 씨가 문을 열었습니다. 거실 바닥에 낡은 이불이 깔려 있었고, 아이가 그 위에서 벽을 짚고 서 있었습니다. 아이 이마에도 땀이 송송 맺혀 있었습니다.
“죄송해요. 수술하고 나서 매일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해서요. 제가 낮에는 마트 계산대에 서 있으니 밤밖에 시간이 안 나요.” 한 씨가 연신 고개를 숙였고,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엄마 뒤에 숨었습니다. 윤 씨는 하려던 말을 삼켰습니다. “아니요, 무슨 일 있나 해서 와 봤어요. 계속하세요.”
다음 날 윤 씨는 딸이 두고 간 두꺼운 운동용 매트를 들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 뒤로 귀마개를 끼고 잤습니다. 아내가 관리실에 말하자고 하면 “애가 걷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막아” 하고 돌아누웠습니다.
그해 가을, 관리비를 내러 간 윤 씨에게 관리소장이 넌지시 말했습니다. 4층이 관리비를 몇 달째 못 내고 있고, 아이가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수술비가 700만 원쯤 모자라 날짜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집을 나갔다고 했습니다.
윤 씨에게는 낡은 택시를 바꾸려고 5년째 붓던 적금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그 집 애 넘어지는 소리 나면 당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잖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튿날 윤 씨는 적금을 깨 관리소장에게 봉투를 건넸습니다. “병원에 바로 내 주세요. 누가 냈는지는 절대 말하지 마시고요. 그 엄마가 알면 우리 집 앞을 편히 못 지나다닐 거예요.”
아이는 그해 겨울 수술을 받았습니다. 한 씨는 엘리베이터에서 윤 씨를 만나도 여전히 고개만 숙였고, 수술비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천장 소리는 해마다 가벼워지더니 몇 해 뒤에는 아예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교복을 입는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윤 씨는 창밖으로 그 뒷모습만 몇 번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집이 이사라도 가면 영영 인사도 못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올가을, 윤 씨는 새벽 손님을 태우고 가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어긴 화물차에 옆을 받혔습니다. 갈비뼈와 왼쪽 무릎을 다쳐 3주 동안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퇴원하던 날은 아침부터 찬비가 내렸습니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목발을 짚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현관 앞에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송장도 없이 매직으로 ‘302호 아저씨께’라고만 적혀 있었습니다.
거실에서 상자를 연 윤 씨는 숨을 멈췄습니다. 맨 위에 아이용 보조 신발 한 켤레가 있었습니다. 뒤꿈치는 닳아 하얗게 일어났고, 앞코에는 수없이 끌린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7년 전 그 밤에 본 신발이었습니다.
신발 아래에는 통장이 있었습니다. 5만 원, 7만 원, 10만 원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고, 첫 입금은 아이가 수술을 받은 바로 그달이었습니다. 마지막 잔액은 700만 원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아저씨, 저 4층 그 아이예요. 아저씨가 한 번도 천장을 두드리지 않으셔서 제가 매일 밤 걷는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제 발로 내려가 인사드릴게요.]
그때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 앞에 키가 훌쩍 큰 남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학생은 윤 씨 앞까지 천천히, 그러나 똑바로 걸어와 허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그 뒤에서 한 씨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관리소장님은 끝까지 말 안 하셨는데, 그때 우리 애 사정을 아는 분이 아저씨뿐이었거든요.” 한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날 밤 올라오신 걸 두고두고 미안해하시는 게 보였어요. 제가 알은척하면 더 불편해하실까 봐 모른 척했어요. 대신 매달 조금씩 모았어요.”
윤 씨는 대답 대신 보조 신발을 두 손으로 쥐었습니다. 아내가 조용히 등을 쓸어 주었고, 윤 씨는 고개를 떨군 채 한참을 말없이 울었습니다.
울음이 잦아들자 윤 씨는 통장을 학생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신발은 내가 받으마. 이건 대학 들어갈 때 써라. 아저씨는 받은 셈 칠게.” 한 씨가 손사래를 쳤지만 윤 씨는 물러서지 않았고, 한 씨는 그 돈을 아들 이름으로 넣어 두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조 신발은 지금 윤 씨 집 장식장 맨 위 칸에 놓여 있습니다.
윗집 소리가 견디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천장을 두드리기 전에 그 소리 너머의 사정을 한 번쯤 물어봐 주는 마음이 한 아이를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이름 없이 건넨 도움은 잊히는 것 같지만, 받은 사람은 그 무게를 오래 기억합니다. 오늘 내 집 위아래에 사는 이웃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늦가을 저녁, 윤 씨는 아파트 뒤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무릎이 성치 않아 걸음이 더뎠지만, 옆에서 걷는 학생도 그 걸음에 맞춰 보폭을 줄였습니다.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하나둘 떨어졌고, 두 사람의 발소리가 낙엽 위에 나란히 이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