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14:46

“친정아버지 간병 도맡았는데..” 법무사 사무실에서 드러난 두 오빠의 민낯

부모가 아프면 자식 가운데 누군가는 곁을 지켜야 합니다. 대개는 가까이 사는 자식이나 마음 약한 자식이 그 짐을 집니다. 그리고 부모가 떠난 뒤 재산을 나누는 자리에서, 오래 묻어 둔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경상도 바닷가 소도시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쉰일곱입니다. 12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동네 어르신 댁을 돌고 있습니다. 남편은 수산물 시장에서 얼음을 나르고, 외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조 씨 위로는 오빠가 둘 있습니다. 큰오빠는 대구에, 작은오빠는 부산에 삽니다.

친정아버지는 평생 고깃배를 탔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삼남매를 키웠습니다. 새벽 바다에서 돌아오면 비린내 나는 손으로 막내딸 머리를 땋아 주던 아버지였습니다. 조 씨가 시집가던 날, 아버지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둔 어머니의 금가락지를 꺼내 딸 손에 끼워 주었습니다. “니 엄마가 끼던 거다. 너는 엄마 얼굴도 잘 모르제.”

아버지에게는 낡은 카세트 녹음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리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두고 밤마다 틀어 놓고 흥얼거렸습니다. 버튼 위 글씨가 다 닳도록 아버지는 그 녹음기를 아꼈습니다.

9년 전,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같은 말을 몇 번씩 되묻고, 한밤중에 배 나가야 한다며 신발을 신었습니다. 조 씨는 오빠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빠, 아버지 혼자 못 계신다. 같이 의논 좀 하자.”

큰오빠는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니가 요양보호사 아이가. 니만큼 잘 모실 사람이 어딨노. 돈 드는 일 있으면 말해라.” 작은오빠도 비슷했습니다. “막내야, 내 형편 알제. 대신 자주 내려갈게.”

조 씨는 아버지를 자기 집 작은방으로 모셨습니다. 낮에는 남의 집 어르신을 돌보고, 저녁에는 아버지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주간보호센터 비용에 약값, 기저귀값까지 다달이 수십만 원이 들었지만 오빠들은 한 번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말을 꺼내면 큰오빠는 “요즘 우리도 힘들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조 씨는 아버지 머리맡에 그 녹음기를 놓아 두었습니다. 흐려져 가는 아버지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저녁마다 녹음 버튼을 누르고 옛날이야기를 청하면, 아버지는 젊은 날 잡은 방어 이야기며 어머니를 처음 만난 장터 이야기를 했습니다. 조 씨는 테이프마다 날짜를 적어 신발 상자에 모았습니다.

명절이면 오빠들은 아버지 얼굴만 잠깐 보고 갔습니다. 큰오빠는 “아버지, 큰애 왔습니다” 하고는 반 시간도 안 돼 일어섰습니다. 그래도 큰아들을 보면 환하게 웃는 아버지가 좋아서 조 씨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초여름, 아버지는 막내딸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석 달 뒤 큰오빠가 유산을 정리하자고 연락해 왔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바닷가 언덕의 낡은 단층집 한 채였습니다. 그사이 개발 바람이 불어 값이 2억 원 가까이 올라 있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읍내 법무사 사무실 창문으로 빗줄기가 흘러내렸습니다. 두 오빠는 먼저 와서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조 씨는 우산을 접고 보자기에 싼 신발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들어섰습니다.

법무사 윤 씨가 서류를 펼치기도 전에 큰오빠가 봉투 하나를 탁자 위로 내밀었습니다. “막내야,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타. 그 집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내한테 주신 기다. 증여 등기도 다 끝났다. 그라니까 나눌 건 별로 없다.”

증여 계약서 맨 아래에 아버지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날짜는 8년 전 가을, 치매 진단을 받고 1년쯤 지난 때였습니다. “오빠, 그때 아버지는 내 얼굴도 못 알아보실 때가 많았다.” 큰오빠는 눈을 피했습니다. “그때는 정신 맑으셨다. 장남한테 주고 싶다 하셨다.” 작은오빠는 탁자만 내려다보았습니다.

조 씨는 말없이 상자를 열고 테이프 하나를 골라 꺼냈습니다. 증여 날짜에서 사흘 뒤의 테이프였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 목소리가 그리워 하나씩 듣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마음에 걸려 있던 바로 그 테이프였습니다. 조 씨는 아버지의 녹음기를 탁자 위에 놓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 끝에 아버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막내야, 큰애가 며칠 전에 왔더라. 도장 가져와서 여기 찍으라 카길래 찍었다. 무슨 종이인지는 모르겠다. 좋은 거라 카더라.”

이어서 테이프 속 조 씨가 물었습니다. “아버지, 큰오빠 혼자 왔어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둘째도 같이 왔더라. 둘이서 반씩 나눈다 카더라. 막내한테는 말하지 말라 카던데, 내가 니한테 말해 뿟네.” 그러고는 허허 웃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야, 오늘 배 나가는 날이가?”

조 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테이프를 끝까지 틀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바다 이야기를 하다가, 막내딸을 부르다가 했습니다. 테이프가 철컥 소리를 내며 멈출 때까지 사무실 안의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작은오빠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막내야, 미안하다. 형님이 집값 오르면 반 떼 준다 캐서….” 큰오빠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조 씨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 집 하나도 안 아깝다. 9년 동안 간병비 한 푼 안 보탠 것도 이제 안 따질란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 손에 도장 쥐여 준 건 못 넘어간다. 아버지가 평생 바다에서 번 집이다.”

법무사 윤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 증여라면 효력을 다퉈 볼 수 있습니다. 진료 기록과 이 녹음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겁니다.”

조 씨는 그 주에 병원에서 아버지의 진단서와 진료 기록을 떼었습니다. 테이프 원본은 그대로 두고 복사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등기를 스스로 되돌려 놓든지, 법으로 하든지 오빠들이 정해라.”

한 달 뒤 큰오빠가 등기를 되돌리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집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돌아와 삼남매가 법대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큰오빠는 끝내 직접 사과하지 않았지만, 작은오빠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며 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속 늙은 왕은 달콤한 말을 하는 두 딸에게 나라를 나눠 주고 정직한 막내딸을 내칩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왕은 끝까지 곁을 지킨 자식이 누구였는지 깨닫습니다.

부모의 재산 이야기는 부모의 정신이 맑을 때, 자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꺼내는 것이 좋습니다. 간병을 맡은 자식이라면 비용과 하루하루의 기록을 남겨 두세요. 그 기록이 부모의 뜻을 지키고, 형제 사이의 마지막 도리까지 지켜 줍니다.

올가을 조 씨는 남편과 함께 아버지가 고깃배를 대던 옛 포구를 찾았습니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 너머로 작은 배들이 물살을 가르며 들어왔고, 저녁노을이 잔물결마다 붉게 번졌습니다. 조 씨는 금가락지 낀 손으로 녹음기를 꼭 쥔 채 해가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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