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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부모님의 입을 닫게 만든다. 기억이 흐려진 부모님에게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자존심이다. 명절 자리에서 어머니가 같은 이야기를 또 꺼내면 자식들은 눈짓부터 주고받는다. 부모님은 그 순간의 공기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다.
기억이 흐린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는 정답을 맞히는 자리가 아니다. 자녀는 별생각 없이 하지만 부모님 마음을 닫게 만드는 말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4위. 기억력을 시험하는 말
오랜만에 찾아온 손주를 두고 “얘 이름이 뭐예요, 그것도 기억 안 나세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자녀는 확인하려는 마음이지만 부모님은 시험지를 받아 든 사람처럼 긴장한다. 답을 못 하면 자식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느낌만 남는다.
이런 질문은 기억을 돕지 못하고 불안만 키운다. 틀릴까 봐 대답을 피하다가 말수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묻기보다 먼저 알려 드리는 편이 낫다. “큰손주 왔어요”처럼 답을 앞에 붙여 말하면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3위. 반복 질문에 짜증 섞인 대답
같은 질문을 세 번째 들으면 “아까 말씀드렸잖아요”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부모님은 무엇을 물었는지는 잊어도, 자식이 귀찮아했다는 느낌은 오래 간직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에게 그 질문은 늘 처음이다. 병원 날짜나 약속처럼 걱정되는 일일수록 되풀이해 묻게 된다. 처음 듣는 것처럼 짧게, 같은 말로 답해 드리는 편이 좋다. 달력이나 메모지에 크게 적어 눈에 띄는 곳에 붙여 두면 묻는 횟수가 줄기도 한다.
2위. 틀린 기억을 그 자리에서 따지는 말
지난 주말에 다녀간 딸이 한 달째 안 온다고 서운해하시면 “무슨 소리예요, 지난주에 왔잖아요”라며 날짜까지 짚어 반박하게 된다. 자녀는 사실을 바로잡았을 뿐이지만, 부모님은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을 느낀다.
따져서 고쳐 놓아도 그 기억은 다시 흐려지고 서운함만 남는다. 큰일이 아니라면 맞서지 않는 편이 무난하다. “많이 보고 싶으셨구나”처럼 말 뒤에 있는 마음을 먼저 받아 드리면 된다. 약이나 돈처럼 꼭 짚어야 할 일은 따로 조용히 확인하면 된다.
1위. 본인 앞에서 다른 가족과 상태를 의논하는 말
부모님이 바로 옆에 계신데 형제끼리 “요즘 더 심해졌어, 혼자 두면 안 되겠어”라고 주고받는 장면이다. 자녀들은 못 알아들으시려니 하지만 부모님은 자기 이야기라는 것을 대개 알아챈다. 그 순간 자신이 대화 상대가 아니라 처리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고 느낀다.
기억이 흐려져도 분위기와 말투를 읽는 감각은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 깊이 박힌다. 돌봄이나 병원 문제는 부모님이 없는 자리에서 의논하고, 부모님에 관한 일은 쉬운 말로 직접 여쭙는 편이 좋다. 그래야 부모님은 여전히 집안의 어른으로 남는다.
기억이 흐려지는 것은 부모님이 고른 일이 아니다. 자녀가 고를 수 있는 것은 그 앞에서 꺼내는 말이다. 오늘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다면 바로잡는 말보다 “그러셨구나”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