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돈은 어려운 사이라고들 합니다. 가까이 지내자니 조심스럽고, 멀리하자니 자식 얼굴이 밟힙니다. 그래서 사돈 사이에 돈이 오가면 받는 쪽도 주는 쪽도 그 돈을 정이라 부를지 빚이라 부를지 끝내 말하지 못하곤 합니다.
윤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재래시장 골목에서 스물여덟 해째 떡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네 시면 쌀을 불리고 시루에 불을 올립니다. 남편은 오토바이로 동네 잔칫집과 교회에 떡을 배달합니다. 외동딸은 서른넷으로, 4년 전 회사 동료였던 사위와 결혼했습니다.
안사돈과의 첫 만남은 상견례 자리였습니다. 윤 씨가 직접 쪄 간 쑥인절미를 안사돈은 연신 집어 먹었습니다. “사돈, 이렇게 쫄깃한 떡은 처음 먹어 봐요.” 그날 이후 윤 씨는 명절마다 가래떡과 송편을 상자째 사돈댁에 보냈습니다. 안사돈도 겨울이면 김장 김치 한 통을 딸 편에 들려 보냈습니다. 윤 씨는 좋은 사돈을 만났다고 남편에게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3년 전 봄, 사위가 혼자 떡집을 찾아왔습니다. 가게 문을 닫을 무렵이었습니다. 사위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습니다. “장모님, 저희 어머니가 갑상선 수술을 받으셔야 한답니다. 제가 집 대출 이자에 쫓겨서 당장 마련이 안 됩니다.” 며칠 뒤에는 안사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돈, 염치가 없어요. 1년 안에 꼭 갚을게요.”
윤 씨는 3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깼습니다. 명절 대목에 밤을 새워 떡을 쪄서 모은 돈이었습니다. 모자란 돈은 가게 통장에서 채워 1,500만 원을 맞췄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사돈끼리 차용증은 좀 그렇지 않소?” 윤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니까 쓰는 거예요. 써 두면 서로 마음이 편해요.” 안사돈이 이름을 적고, 사위가 그 옆에 함께 서명했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윤 씨는 회복에 좋다는 찹쌀죽을 쑤어 병원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돈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사이 딸이 아이를 가졌고, 윤 씨는 임신한 딸 앞에서 빚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엄마, 그 돈은 어떻게 됐어?” 하고 물어도 “때 되면 주시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올여름, 손주가 백일을 맞았습니다. 백일상은 사돈댁 근처 한정식집 별실에 차렸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윤 씨는 전날 밤을 꼬박 새워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쪘습니다. 백설기는 아이가 깨끗하게 자라라는 뜻이고, 수수팥떡은 액운을 막아 준다는 떡입니다. 윤 씨는 떡 상자 두 개를 품에 안고 별실 문 앞에 섰습니다.
안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사돈댁 친척 열댓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안사돈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재작년에 수술했잖아. 그때 병원비가 1,500만 원이나 나왔는데, 우리 아들이 적금 깨서 다 댔어. 한마디 군소리도 없이.”
친척 한 사람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형님은 아들 하나는 잘 두셨어요.”
윤 씨는 문고리를 잡은 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사위가 보였습니다. 사위는 그 자리에 앉아 술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라고, 그 돈은 장모님 돈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위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윤 씨는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별실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윤 씨는 떡 상자를 백일상 끝에 가지런히 내려놓았습니다. “우리 손주 무럭무럭 크라고 쪄 왔습니다.” 그리고 사위를 보며 말했습니다. “자네, 잠깐 나 좀 보세.”
복도 끝에서 윤 씨는 가방 속 봉투를 꺼냈습니다. 2년 동안 장롱 서랍에 넣어 두었던 차용증이었습니다. 안사돈의 이름 옆에 사위의 서명이 또렷했습니다.
“방금 들은 말, 자네도 들었지?”
사위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모님, 죄송합니다. 집안 어른들 앞에서 처가 돈으로 수술했다는 말이 나오면 어머니가 체면이 상하신다고 해서요. 어머니도 그 돈 장모님 돈인 거 다 아십니다. 그런데 사돈끼리 그만한 건 서로 보태는 거라고, 갚을 필요 없다고 하셔서…….”
그때 안사돈이 복도로 따라 나왔습니다. 차용증을 본 안사돈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사돈, 경사스러운 날에 이게 뭐예요. 손주 키우는 데 보탠 셈 치시면 되잖아요.”
윤 씨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사돈, 보탠 거였으면 처음부터 차용증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이 돈은 제가 새벽마다 쌀 씻어서 번 돈입니다. 아드님이 냈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그럼 아드님이 갚으시면 되겠지요.”
윤 씨는 그날 백일상에 앉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뒤, 사위가 딸과 함께 떡집을 찾아왔습니다. 윤 씨는 차용증을 앞에 두고 조건을 하나씩 말했습니다. 매달 50만 원씩, 서른 달에 걸쳐 갚을 것. 그 돈은 딸의 살림에서 빼지 말고 사위와 사돈댁이 책임질 것. 날짜와 금액은 통장으로만 주고받을 것. 사위는 새 차용증에 서명했고, 딸은 엄마 손을 잡고 울었습니다. “엄마, 진작 나한테 다 말하지 그랬어.”
그 뒤로 윤 씨는 사돈댁에 명절 떡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안사돈의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손주는 딸이 데려올 때 떡집에서 실컷 안아 주었습니다. 사위의 입금은 지금까지 한 달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늙은 신하 폴로니어스는 길 떠나는 아들에게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라고 당부합니다. 빌려준 돈은 돈과 친구를 함께 잃게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가족 사이의 돈일수록 정과 빚을 처음부터 분명히 나눠 두어야 합니다. 차용증 한 장이 야박해 보여도, 그 한 장이 나중에 내 마음과 내 자식의 살림을 지켜 줍니다. 그리고 서운한 일 앞에서 언성을 높일 필요는 없습니다.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면 됩니다.
올가을 윤 씨는 떡집 앞 평상에 앉아 남편과 햅쌀 시루떡을 나눠 먹었습니다. 시장 골목 위로 늦은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았고, 맞은편 과일 가게 앞에는 붉은 감이 소복이 쌓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김이 오르는 떡을 사이에 두고 골목이 어둑해질 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