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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고 누웠는데 낮에 있었던 장면 하나가 자꾸 되감기는 밤이 있다. 자식에게 괜히 날카롭게 건넨 말, 모임 자리에서 끝내 꺼내지 못한 한마디, 몸이 무겁다는 핑계로 미뤄둔 약속 같은 것들이다. 몸은 누워 있는데 마음은 그 하루를 처음부터 다시 살고 있다.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이런 밤은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곱씹을 기억도 함께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저서 『오은영의 화해』에서 “매일 잠들기 전 나를 용서하세요”라고 적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하루의 끝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가 담겨 있다. 용서는 흔히 남에게 베푸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문장은 그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다. 부족했던 나를 꾸짖으며 잠드는 대신 오늘의 나를 받아들이고 눈을 감으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스스로를 다독이는 밤에는 몇 가지 습관이 함께 자리한다.
3위 – 하루를 닫는 짧은 정리
용서는 무엇을 용서하는지 알아야 시작된다. 막연히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누우면 마음은 이유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그러다 오늘 일이 어제 일로 번지고, 어제 일은 십 년 전 일까지 끌고 온다. 마음이 하루의 경계를 넘어 과거 전체를 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한두 줄로 정리해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을 하나씩만 적는 식이다. 거창한 일기가 아니어도 된다. 적어 두면 아쉬움은 ‘오늘의 일’이라는 크기로 줄어들고, 더 이상 삶 전체에 대한 판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정리는 용서의 준비 단계라 할 만하다.
2위 – 남을 대하듯 나를 대하는 마음
친구가 “오늘 내가 말실수를 했다”며 속상해하면 대부분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답한다. 그런데 같은 실수를 내가 했을 때는 그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남에게는 너그럽고 나에게는 엄격한 것이 많은 사람의 오래된 습관이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간극은 더 크다.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이 간극을 조금 좁히는 일이다. 오늘의 실수를 떠올릴 때 아끼는 사람이 같은 일을 겪었다면 무어라 말해 줬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말을 그대로 나에게 돌려주면 된다. 기준을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쓰던 따뜻한 기준을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다.
1위 – 잠들기 전 건네는 용서의 한마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어록 그 자체다. 하루를 정리하고, 남을 보듯 나를 바라봤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실제로 나를 용서하는 일이다. 용서는 생각으로만 머물 때보다 말이 되었을 때 더 분명해진다. 속으로라도 “오늘 그 일은 이제 놓아준다”고 말해 보면, 마음이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자리가 생긴다.
이것이 매일이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루치의 자책은 하룻밤에 내려놓을 수 있지만, 쌓인 자책은 쉽게 덜어지지 않는다. 오늘의 나를 오늘 밤 용서하면 내일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삶이 하루하루의 합이라면, 매일 밤의 용서는 그 삶을 덜 무겁게 만드는 가장 작은 단위의 습관이다.
거창한 결심은 필요하지 않다. 오늘 밤 머리맡에 작은 메모지 한 장과 펜을 놓아두면 된다. 불을 끄기 전 오늘 아쉬웠던 일 하나를 적고, 그 아래에 “그래도 괜찮다”라고 한 줄을 덧붙인다.
그리고 메모지를 접어 내려놓은 뒤 눈을 감는다. 내일 아침 그 종이를 다시 펼쳐 보면, 어젯밤 그토록 무거웠던 일이 생각보다 작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