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04:30

“남동생 공장 대출에 2억 보증 섰는데..” 조카 결혼식장에서 드러난 남동생의 민낯

형제자매 사이에 돈이 오가는 일은 흔합니다. 한 부모 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자란 사이니 서류보다 마음을 먼저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클수록 무너질 때 남는 상처도 깊습니다.

강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 시장 골목에서 31년째 분식집을 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순대, 김밥을 파는 작은 가게입니다. 남편은 15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은 결혼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강 씨는 사 남매의 맏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봉제 공장에 다녔습니다. 아홉 살 아래 막내 남동생의 학비는 모두 강 씨의 월급봉투에서 나왔습니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강 씨는 공장에 반나절 휴가를 내고 꽃다발을 들고 갔습니다. 동생은 누나를 끌어안으며 말했습니다. “누나, 내가 나중에 꼭 호강시켜 줄게.”

동생은 서른 중반에 포장재 공장을 차렸습니다. 명절이면 고기 선물 상자를 들고 분식집에 찾아와 “우리 누나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하며 한 접시를 다 비우고 갔습니다. 강 씨는 그런 동생이 대견했습니다.

9년 전 봄, 동생이 문 닫을 무렵 가게에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까칠했습니다. “누나, 거래처 대금이 묶여서 은행에서 2억을 빌려야 하는데 담보가 모자란대. 누나 집을 한 번만 담보로 잡게 해 줘. 1년 안에 꼭 풀어 줄게.”

강 씨의 집은 남편과 20년 동안 가게 수입을 아껴 마련한 작은 빌라였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학비 봉투를 받아 들던 어린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 씨는 은행에 가서 담보 제공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1년 뒤 동생의 공장은 부도가 났습니다. 동생은 누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누나, 다 날아갔어. 집사람 미용실도 정리했어. 나 이제 아무것도 없어.” 은행은 담보로 잡힌 강 씨의 빌라를 경매에 넘겼고, 강 씨는 가게 근처 반지하 월세방으로 옮겼습니다.

딸은 속상해서 울었지만 강 씨는 동생을 원망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망한 사람 붙잡고 따져서 뭐 하겠니. 살아만 있으면 됐다.” 동생은 그 뒤로 처가 쪽 일을 거든다며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강 씨는 새벽 다섯 시에 가게 문을 열고 밤 열 시에 닫으며 다시 살림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동생의 외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이었습니다. 강 씨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한복을 꺼내 입고, 석 달 동안 따로 모은 50만 원을 봉투에 넣었습니다. 아무리 서운해도 조카 잔치는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식장은 번듯했습니다. 하객 테이블마다 꽃이 놓였고 샹들리에가 반짝였습니다. 동생 부부는 고운 한복과 맞춤 양복 차림으로 하객을 맞았습니다. 강 씨를 본 동생은 잠깐 눈을 피하더니 “누나, 와 줬네” 하고 짧게 인사했습니다.

예식이 끝나갈 무렵 신부 아버지가 혼주 인사를 하러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목소리가 컸습니다.

“바쁘신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사돈댁에 고맙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젊은 애들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신혼집 아파트까지 다 해 주셨습니다.”

하객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신부 아버지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습니다.

“사돈어른께서 공장 정리하시던 그해에 안사돈 명의로 상가 건물을 하나 사 두셨답니다. 남들은 망했다고 할 때 그렇게 앞을 내다보셨으니, 그 건물 세가 9년 동안 효자 노릇을 해서 오늘 아파트까지 나왔다지 뭡니까. 우리 딸이 복 많은 집에 시집갑니다.”

장내에 웃음과 박수가 터졌습니다. 강 씨는 손에 쥔 물컵을 내려놓지도 못했습니다. 9년 전, 공장을 정리하던 그해는 강 씨의 빌라가 경매로 넘어간 해였습니다. 동생이 무릎 꿇고 “아무것도 없다”고 울던 바로 그해였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촌 동생이 강 씨의 손을 슬며시 잡았습니다. 친척 테이블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신랑 쪽 혼주석의 동생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올케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습니다.

강 씨는 식사를 하지 않고 일어섰습니다. 봉투는 축의금 함에 넣었습니다. 조카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흘 뒤 동생이 분식집에 찾아왔습니다. 강 씨는 떡볶이 판을 젓던 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나, 그게… 집사람 이름으로 해 두면 그거라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자리 잡으면 누나 것부터 갚으려고 했어.”

“9년이다. 자리 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네가 건물 세 받는 동안 나는 반지하에서 곰팡이 닦았다.”

강 씨는 그날 밤 동네 무료 법률 상담 창구를 찾았습니다. 상담원은 부도 직전에 재산을 가족 명의로 돌린 일은 따져 볼 여지가 있지만, 시간이 너무 흘러 법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강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대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일주일 뒤 강 씨는 동생 부부를 가게로 불러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경매로 잃은 금액을 적은 차용증이었습니다. “소송은 안 하마. 갓 결혼한 조카 앞길 막고 싶지 않아서다. 대신 여기 도장 찍고 매달 갚아라. 그리고 앞으로 나를 누나라고 부를 때는 그 값을 하고 불러라.”

올케가 먼저 펜을 들었습니다. 동생은 한참 종이를 내려다보다 도장을 찍었습니다. 다음 달 초, 강 씨의 통장에 첫 돈이 들어왔습니다.

옛이야기 속 놀부는 형제의 몫을 차지하고도 끝내 부족하다 여겼습니다. 욕심은 피를 나눈 사이라고 비켜 가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보증이나 담보를 서 줄 때는 마음만큼 서류도 챙겨야 합니다. 어려울 때 돕는 것은 정이지만, 그 정이 한쪽만의 희생으로 끝나지 않도록 약속을 글로 남겨 두세요. 그 종이 한 장이 관계를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가 되기도 합니다.

올가을 강 씨는 딸과 손주들을 데리고 동네 뒷산 둘레길에 올랐습니다. 단풍 든 참나무 사이로 시장 골목 지붕들이 내려다보였고, 저녁 햇살이 분식집 간판 위에 따뜻하게 내려앉았습니다. 강 씨는 손주의 손을 잡고 천천히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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