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4:44

“택시 팔아 아들 빚 7천만원 갚았는데..” 4년 뒤 아들이 몰고 온 택시에 울었다

자식의 빚을 대신 갚아 주는 부모는 돈만 내놓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붙들고 살던 일터와 자존심까지 함께 내려놓습니다. 그러고도 자식 앞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 얼굴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에 사는 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서른 해 동안 개인택시를 몰았고, 지금은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4년째 경비원으로 일합니다. 아내와 둘이 살고, 외아들은 결혼해 같은 도시에서 딸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서 씨의 택시는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번호판 끝 네 자리가 ‘1004’여서 단골손님들은 문을 열 때마다 “천사 택시 오셨네” 하며 웃었습니다. 서 씨는 그 번호를 받던 날 일부러 세차장에 가서 번호판부터 닦았다고 합니다.

아들은 어릴 적 주말마다 조수석에 앉아 아버지를 따라다녔습니다. 손님이 내리면 미터기 숫자를 큰 소리로 읽었고, 서 씨는 그 값으로 붕어빵을 사 주었습니다. 아들 수능 날에는 새벽 다섯 시에 택시를 몰고 나가 수험생들을 시험장까지 공짜로 태워 주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던 날에는 택시 보닛에 흰 리본을 달고 신혼부부를 식장에서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직접 데려다주었습니다.

아들은 서른다섯에 회사를 그만두고 시내에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처음 1년은 손님이 줄을 섰지만 전염병이 돌면서 하루아침에 발길이 끊겼습니다. 임대료와 대출 이자, 밀린 거래처 대금이 쌓였습니다.

4년 전 겨울, 아들이 늦은 밤 부모 집 부엌 식탁에 앉았습니다. “아버지, 가게 접어야겠어요. 정리해도 빚이 남아요.” 서 씨가 물었습니다. “얼마냐.” 아들은 한참 만에 대답했습니다. “칠천이요.”

서 씨 부부가 모은 적금은 2000만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나머지를 마련할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내가 서 씨의 소매를 붙잡았습니다. “여보, 그거 팔면 당신은 뭐 하고 살아요.” 서 씨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운전대야 다시 잡으면 되지. 애 앞길이 막히면 그건 못 뚫는다.”

서 씨는 택시 일을 같이 하던 후배 최 씨에게 면허와 차를 넘겼습니다. 차를 건네던 날 서 씨는 걸레로 운전대를 오래 닦았습니다. 최 씨가 “형님, 번호판은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자 서 씨는 손을 내저으며 돌아섰습니다. 그 돈과 적금을 합쳐 아들의 빚 7000만원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 뒤로 서 씨는 경비복을 입었습니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맞교대였고, 낙엽을 쓸고 분리수거장을 정리하고 택배를 받아 두었습니다. 가끔 단지 앞으로 택시가 지나가면 서 씨는 빗자루를 든 채 번호판을 눈으로 좇았습니다.

아들은 시내 물류회사에 다시 취직했지만 얼굴이 점점 수척해졌습니다. 명절에도 밥만 먹고 서둘러 일어났고, 전화를 걸면 늘 목소리가 잠겨 있었습니다. 서 씨는 아내에게 “저놈이 아비한테 미안해서 피하나 보다” 하고 쓸쓸히 말했습니다. 서운한 마음보다 아들이 기가 꺾였을까 걱정이 더 컸습니다.

올해 11월 초, 이슬비가 그친 아침이었습니다. 서 씨는 경비실 앞 은행나무 아래에서 젖은 잎을 쓸어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얀 택시 한 대가 정문을 지나 경비실 앞에 섰습니다. 서 씨는 빗자루를 세워 두고 다가갔습니다. “기사님, 손님 내리실 거면 저쪽으로….”

말이 끝나기 전에 운전석 문이 열리고 아들이 내렸습니다. 서 씨는 아들 얼굴을 보다가 차 앞쪽 번호판으로 눈을 옮겼습니다. 끝 네 자리가 1004였습니다. 서 씨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서류 봉투 하나와 차 열쇠를 아버지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아버지, 면허 양도양수 계약서예요. 최 씨 아저씨랑 다 얘기 끝냈어요. 아버지 도장이랑 관청 인가만 남았어요.” 서 씨의 손에서 봉투가 바르르 떨렸습니다.

“너, 이 돈이 어디서 났냐.” 아들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4년 동안 낮엔 회사 다니고, 밤엔 대리운전 했어요. 남의 차 운전대 잡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했어요.”

아들은 목이 메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갔습니다. “아버지 손때 묻은 번호, 제가 꼭 찾아오고 싶었어요. 다른 번호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뒤따라 내린 며느리가 거들었습니다. “아버님, 이 사람 4년 동안 새벽 세 시 전에 들어온 날이 손에 꼽아요. 명절에 일찍 일어난 것도 대리 콜 받으러 나간 거였어요.” 서 씨는 그제야 아들의 잠긴 목소리와 수척한 얼굴이 무엇이었는지 알았습니다.

최 씨도 전화로 사정을 전했습니다. 아들이 3년 전 찾아와 “돈 모으면 그 번호 꼭 저한테 파셔야 합니다” 하고 약속을 받아 갔다고 했습니다. “형님 번호를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야 있나요. 저는 다른 차 알아봤습니다.”

서 씨는 경비복 차림 그대로 운전석에 앉았습니다.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남은 운전대를 두 손으로 붙잡자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른 해 동안 손님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던 사람이 그날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등을 쓸며 말했습니다. “예순다섯 넘으면 받아야 하는 자격유지검사 날짜도 알아 놨어요. 이제 경비실은 그만 나오세요.” 서 씨는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경비실 창문 너머로 동료 경비원들이 모자를 벗어 들고 박수를 쳤습니다.

자식에게 건넨 돈은 대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줍니다. 부모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받은 자식이 짐을 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가 내려놓은 것이 돈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자식이 어느 날 무언가를 들고 찾아오거든 손사래부터 치지 마십시오. 그것은 빚을 갚는 일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을 되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주말, 서 씨는 다시 찾은 택시에 첫 손님으로 아내와 아들 내외, 손녀를 태웠습니다. 노랗게 물든 강변길을 천천히 달리는 동안 손녀가 조수석에서 미터기 숫자를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서 씨는 그 값으로 길가 포장마차에서 붕어빵 한 봉지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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