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7:09

“조카 전세 보증 4000만원 섰는데..” 3년 뒤 압류 통지 옆 청첩장에 손이 떨렸다

피를 나눈 형제 사이에서 “도장 하나만 찍어 달라”는 부탁만큼 거절하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돈을 직접 건네는 것도 아니고 서류에 이름만 올리는 일이라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보증은 남의 빚을 언제든 내 빚으로 떠안겠다는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일이 터진 뒤에야 깨닫습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 시장 어귀에서 철물점을 하는 한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스물여덟에 손바닥만 한 가게를 얻어 못과 경첩, 수도꼭지를 팔기 시작한 지 서른세 해째입니다.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가게를 지켜 왔고, 딸은 시집가 수도권에 살며 아들은 지방 공기업에 다닙니다. 부부는 가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24평 아파트 한 채를 평생 일군 재산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한 씨는 사 남매 중 셋째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다섯 살 위 큰형이 집안의 기둥 노릇을 했습니다. 한 씨가 중학교 등록금을 못 내 울던 해, 큰형은 공장에서 받은 첫 월급봉투를 통째로 내밀었습니다. “너는 공부해야 한다.” 한 씨는 그 말을 평생 갚아야 할 빚처럼 품고 살았습니다.

조카는 큰형의 외아들입니다. 어릴 적 방학이면 철물점 계산대 옆에 앉아 나사를 크기별로 나누며 놀았습니다. 한 씨는 조카가 돌아갈 때마다 금고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쥐여 주었고, 대학에 붙던 날에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삼겹살을 샀습니다. 아내는 “당신 자식보다 조카를 더 챙긴다”며 웃곤 했습니다.

3년 전 봄, 서른한 살이던 조카가 큰형과 함께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수도권으로 직장을 옮기며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데, 신용이 모자라 보증인이 있어야 대출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증 금액은 4,000만 원이었습니다.

큰형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서 주면 좋은데 나는 빚이 있어서 안 된다더라. 네가 좀 해 줘라.” 조카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작은아버지, 이자는 한 번도 안 밀리고 낼게요. 2년 뒤엔 꼭 정리하겠습니다.” 한 씨는 형의 첫 월급봉투가 떠올라 차마 고개를 저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물었습니다. “여보, 4,000만 원이면 우리가 몇 년을 벌어야 모으는 돈인지 알아요?” 한 씨는 “형님 아들이야. 설마 우리한테 떠넘기겠어” 하고 달랬습니다. 이튿날 한 씨는 서류마다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 부부는 가게 수입에서 다달이 50만 원씩 떼어 따로 적금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1년은 조용했습니다. 조카는 명절마다 홍삼 세트를 들고 왔고, 이자도 잘 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년째부터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대출 이야기를 꺼내면 “알아서 하고 있어요”라는 짧은 문자만 돌아왔고, 큰형도 “애가 바빠서 그렇다”는 말뿐이었습니다. 한 씨는 괜히 의심하는 것 같아 더 묻지 못했습니다.

올해 9월 말,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오후였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집에 들른 한 씨는 아파트 1층 우편함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봉투 두 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습니다. 하나는 법원 이름이 찍힌 누런 등기 봉투였고, 다른 하나는 금박을 두른 하얀 봉투였습니다.

누런 봉투에는 부동산 가압류 결정 통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조카가 1년 넘게 이자를 내지 않자,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가 보증인인 한 씨의 아파트에 가압류를 걸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원금에 밀린 이자와 연체 이자까지 더한 금액은 4,000만 원을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하얀 봉투를 열자 곱게 인쇄된 청첩장이 나왔습니다. 조카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예식장은 대도시의 한 특급 호텔 연회장이었고, 날짜는 두 달 뒤 토요일이었습니다. 맨 아래에는 ‘신혼여행 관계로 인사는 귀국 후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통지서를 받아 읽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이 집이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내는 통지서를 가슴에 꼭 쥔 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서른 해 넘게 쇳가루 묻은 손으로 모은 집이었습니다.

한 씨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번 만에 받은 목소리는 태연했습니다. “아, 작은아버지. 결혼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호텔은 처가에서 원했고, 유럽 신혼여행도 이미 예약해 놔서 취소하면 위약금이 커요. 그건 식 끝나고 천천히 정리할게요.”

한 씨는 곧장 큰형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큰형은 통지서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애가 결혼하는데 지금 그 돈을 어디서 구하냐. 보증 선 사람이 알아서 해야지. 너도 알고 도장 찍은 거 아니냐.” 등록금 봉투를 내밀던 형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낯설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한 한 씨는 이튿날 셔터를 올리는 대신 시장 건너편 법무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30년 가까운 단골인 오 씨가 서류를 살펴보고 말했습니다. “보증인이 빚을 대신 갚으면 그만큼 조카에게 돌려 달라고 청구할 수 있습니다. 구상권이라고 하지요. 우선 집부터 지키시고, 갚은 돈은 꼭 기록으로 남기세요.”

한 씨는 3년 동안 부은 적금을 깨고, 모자라는 돈은 가게 운영 자금에서 끌어와 빚을 정리했습니다. 가압류가 풀린 날, 한 씨는 축의금 봉투 대신 내용증명 한 통을 우체국에 맡겼습니다. 대신 갚은 금액과 날짜를 하나하나 적고, 기한까지 돌려주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큰형에게는 문자 한 줄만 보냈습니다. “형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제 각자 삽시다.” 한 씨는 결혼식에 가지 않았고, 그 뒤로 형의 집 문턱도 넘지 않았습니다.

정은 빚을 대신 갚아 주는 데서 시작되지만, 그 빚을 끝까지 남에게 미루는 순간 끝나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 집과 노후를 내놓을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보증 부탁을 받으면 금액과 기간을 꼼꼼히 확인하고, 상환 상황을 직접 알아볼 방법을 미리 정해 두십시오. 그리고 거절해도 괜찮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거절은 정을 끊는 일이 아니라 내 식구를 지키는 일입니다.

늦가을 아침, 한 씨는 시장 골목 철물점 셔터를 힘껏 올렸습니다. 은행잎이 수북한 가게 앞을 아내가 비질했고, 한 씨는 난로에 물주전자를 올렸습니다. 두 사람은 김이 오르는 보리차를 나눠 마시며 첫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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