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4 06:54

“옆집 할머니 입원비 400만원 댔는데..” 표창식에서 드러난 동네 통장의 민낯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색을 내면 받는 사람 마음이 무거워질까 봐 조용히 손만 보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워 둔 자리를 엉뚱한 사람이 차지하는 일도 세상에는 종종 있습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 시장 골목에서 35년째 작은 옷 수선집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십 년 전 지병으로 먼저 떠났고, 외동딸은 지방으로 시집가 손주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게 안에서는 남편이 사 준 낡은 재봉틀이 아직도 하루 종일 돌아갑니다.

9년 전, 수선집 옆 단칸 셋집에는 초등학생 남매가 살았습니다. 2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할머니는 무릎이 나빠 지팡이 없이는 문밖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열두 살 누나가 동생 밥을 챙기고 할머니 약을 타 왔습니다.

어느 날 누나가 꽃무늬 원피스 한 벌을 들고 가게에 왔습니다. “엄마가 입던 옷인데요, 학예회 때 입게 저한테 맞게 줄여 주실 수 있어요?” 황 씨는 그날 밤늦도록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원피스를 받아 든 누나가 수선비를 내밀자 황 씨는 아이 손을 도로 접어 주었습니다.

열 살 동생은 바지 무릎에 늘 구멍을 내 왔습니다. 황 씨는 그때마다 자투리 천으로 자동차 모양을 오려 덧대 주었습니다. 동생은 학교에 가서 “우리 옆집 할머니가 만들어 준 거야” 하고 자랑했습니다. 저녁이면 남매는 가게 앞 평상에서 숙제를 하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날부터 황 씨는 가게 뒷방에서 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겨울, 할머니가 빙판길에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수술을 받고 입원한 지 열흘째 되던 날, 황 씨는 병원 원무과 앞 의자에서 울고 있는 누나를 보았습니다. “중간에 병원비를 내야 한대요. 400만 원이래요. 못 내면 할머니 어떻게 돼요?”

황 씨는 그 길로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깼습니다. 재봉틀을 새것으로 바꾸려고 3년 동안 가게 수입에서 매달 떼어 부은 돈이었습니다. 원무과에 돈을 내고 납부 확인서에 서명한 뒤 황 씨는 직원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동네에서 모아 낸 돈이라고만 해 주세요.”

그 뒤로 3년 동안 황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남매의 저녁을 챙겼습니다. 가게 문을 닫기 전 반찬통 세 개에 밥과 국, 나물을 담았습니다. 통이 자꾸 없어지자 뚜껑마다 매직으로 ‘수선집 통, 꼭 돌려줘’라고 써 두었습니다.

그 무렵 동네 통장 정 씨가 상인들을 돌며 ‘남매 돕기 후원함’을 만들었습니다. 상인들은 매달 만 원, 이만 원씩 넣었고 돈 관리는 정 씨가 맡았습니다. 정 씨는 가끔 쌀 한 포대를 들고 남매 집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나 “그 집 할머니 병원비도 내가 백방으로 뛰어서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황 씨는 그 말을 듣고도 웃어넘겼습니다. 누가 냈든 할머니만 나으면 그만이었습니다.

3년 뒤 남매는 할머니와 함께 다른 동네 임대주택으로 이사했습니다. 떠나던 날 누나는 반찬통 하나를 끝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이건 제가 가질게요.” 그 뒤로는 명절 안부 문자만 이따금 오갔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정 씨는 동네에서 ‘부모 잃은 남매를 키운 통장’으로 불렸습니다. 딸은 전화로 속상해했습니다. “엄마, 억울하지도 않아?” 황 씨는 실밥을 뜯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상 받자고 밥 해 먹였냐.”

올해 11월 초, 주민센터에서 ‘모범 이웃’ 표창식이 열렸습니다. 수상자는 통장 정 씨였습니다. 황 씨는 자리를 채워 달라는 상인회의 부탁에 앞치마를 벗어 두고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찬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2층 강당에는 접이식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었습니다. 황 씨는 맨 뒷줄 끝자리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동장이 단상에서 공적을 읽었습니다. “9년 동안 부모 잃은 남매를 친자식처럼 돌보고, 할머니 병원비까지 마련해 주신….” 양복을 차려입은 정 씨가 꽃다발을 안고 단상에 올랐습니다. 박수가 터지려던 그때, 강당 앞문이 열리고 청년 둘이 들어왔습니다.

스물한 살이 된 누나와 대학 새내기가 된 동생이었습니다. 정 씨가 반색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애들 왔구나.” 누나는 그 손을 지나쳐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죄송하지만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저희가 그 남매입니다.”

강당이 술렁였습니다. 누나는 누렇게 바랜 봉투 하나를 꺼냈습니다. “할머니가 지난봄에 돌아가셨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9년 전 입원비 영수증과 납부 확인서를 찾았습니다. 통장님이 마련하셨다던 400만 원, 납부자 서명란에 적힌 건 통장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가방에서 낡은 반찬통을 꺼내 들었습니다. 빛바랜 뚜껑 위에 ‘수선집 통, 꼭 돌려줘’라는 글씨가 또렷했습니다. “3년 동안 저희 저녁은 매일 이 통에 담겨 왔습니다. 통장님께 받은 건 사진 찍던 날의 쌀 몇 포대가 전부였습니다.”

누나가 말을 이었습니다. “시장 어르신들께 여쭤 보니 후원함에 모인 돈이 수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손에 들어온 건 그 돈의 몇 분의 일도 안 됩니다.” 객석에서 생선가게 주인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내가 9년 동안 매달 이만 원씩 넣었어. 그 돈 다 어디 갔어?”

정 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장부가 다 있어요. 오해가….” 그러나 말끝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누나는 강당 맨 뒤를 가리켰습니다. “저희를 먹여 살린 사람은 저기 맨 뒷줄에 앉은 수선집 할머니입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황 씨는 어쩔 줄 몰라 몸을 움츠렸습니다. 동장이 정 씨 손에서 표창장을 받아 들고 통로를 걸어 내려왔습니다. “어르신, 이 상은 처음부터 어르신 것이었습니다.” 남매가 달려와 황 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할머니, 반찬통 9년 만에 돌려드려요.”

며칠 뒤 주민센터는 정 씨를 통장 일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동안의 후원금 사용 내역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황 씨는 정 씨를 탓하는 이웃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억울한 거 하나도 없다. 그 돈 넣은 이웃들 마음이 아까울 뿐이지.” 남매는 돌려받는 후원금이 있으면 동네의 다른 아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했습니다.

이솝 우화에는 공작의 깃털을 주워 몸에 꽂고 공작인 척하던 까마귀가 나옵니다. 까마귀는 결국 공작들에게 깃털을 모두 뽑히고 맙니다. 남의 정성으로 꾸민 이름은 언젠가 제 주인을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선행은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남습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는 밥 한 그릇이 훗날 가장 정확한 증인이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첫눈이 내린 저녁, 남매는 수선집 뒷방에 앉아 황 씨가 차린 된장국과 나물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세 사람은 불 꺼진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가로등 아래로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였고, 수선집 유리문에는 표창장 한 장이 조용히 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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