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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도 끝내 말하지 못하는 돈이 있습니다. 상대가 속을 끓일까 봐,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봐 혼자 짊어진 돈입니다. 그런 돈은 대개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서 김밥집을 하는 오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스물여덟 해째 새벽 다섯 시면 셔터를 올리고 밥솥에 불을 켭니다. 남편은 동네 목공소에서 평생 문짝과 창틀을 짜던 목수였습니다. 은퇴한 뒤로는 아내 가게에서 단무지를 썰고 배달을 거들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해 따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삼 형제의 맏이였습니다. 열일곱 살에 부모를 잇달아 여의고 두 남동생을 거의 혼자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신혼 시절 단칸방에 시동생 둘과 갓난 아들까지 다섯 식구가 살았고, 오 씨는 날마다 도시락을 네 개씩 쌌습니다. 막내 시동생이 입대하던 날, 남편은 부대 철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동생들 일이라면 밥을 못 넘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시동생이 등록금을 못 냈을 때는 사흘 밤을 마당에서 지새웠고, 그 무렵부터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오 씨는 그런 남편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 사람 앞에는 동생들 걱정거리를 되도록 들이지 말자고.
20년 전 겨울, 둘째 시동생이 가게 문을 닫을 무렵 찾아왔습니다. 하던 식당이 망한 뒤 카드 돌려막기로 버티다 빚이 1500만원까지 불었다고 했습니다. “형수님, 형한테는 제발 말하지 마세요. 형이 알면 쓰러집니다.” 오 씨는 김발을 말다 말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가게 매출은 남편 이름의 통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오 씨는 거기서 하루 만 원, 이만 원씩 자기 통장으로 옮겨 모아 두었습니다. 늙어서 남편과 제주도라도 한번 가려던 돈이었습니다. 오 씨는 그 돈을 찾아 카드사에 직접 빚을 갚았고, 완납 확인서를 받아 왔습니다.
4년 뒤에는 막내 시동생이 친구 보증을 섰다가 1000만원을 떠안았습니다. 이번에도 “형한테만은…”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오 씨는 두 해에 걸쳐 채권자를 찾아가 나누어 갚았고, 그때마다 영수증을 받아 노란 고무줄로 묶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갚은 돈이 모두 2500만원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시동생들 형편도 폈습니다. 둘째는 화물차를 몰았고, 막내는 작은 세차장을 냈습니다. 그런데 명절에 얼굴을 보는 일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없는 건 괜찮았지만, 형 생일에 전화 한 통 없는 해에는 오 씨도 서운했습니다. 남편은 “다들 먹고살기 바쁘겠지” 하며 동생들 편을 들었습니다.
올봄 남편이 폐렴으로 입원했습니다. 병상에서 남편은 병원비를 정리해 달라며 둘째 시동생에게 통장을 맡긴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여섯 달을 버티다 10월 끝자락에 눈을 감았습니다. 일흔이었습니다.
발인 전날 저녁, 장례식장 창밖으로는 늦가을 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빈소에는 목공소 옛 동료들과 시장 상인들이 가득했고, 국화 향 사이로 육개장 냄새가 번졌습니다. 오 씨는 상복 차림으로 조문객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소주 몇 잔을 비운 둘째 시동생이 서류 뭉치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형수님, 이거 설명 좀 해 보세요. 형 통장에서 20년 동안 돈이 꼬박꼬박 빠져나갔어요. 합치면 2500만원이 넘습니다.” 빈소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막내 시동생도 거들었습니다. “형이 평생 고생해서 번 돈인데, 형수님이 따로 빼돌린 거 아닙니까. 어디다 썼는지 우리도 알아야겠어요.” 조문객들이 수저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들이 벌떡 일어서려 하자 오 씨가 아들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오 씨는 상주석 옆 가방에서 낡은 보자기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귀퉁이가 닳은 통장 한 권과 노란 고무줄로 묶은 종이 묶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 씨는 그것을 영정 앞 상 위에 하나씩 펼쳤습니다.
“그래요, 빼 갔습니다. 형님 통장에서 내 통장으로, 내 통장에서 서방님들 빚쟁이한테로요.” 맨 위에는 둘째 시동생 이름이 적힌 2006년 12월 카드 대금 완납 확인서가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막내 시동생의 보증 채무를 나누어 갚은 영수증이 날짜순으로 이어졌습니다.
오 씨는 시동생이 들고 온 통장 내역 옆에 영수증을 한 장씩 맞대어 놓았습니다. 돈이 빠져나간 날과 빚을 갚은 날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서방님들이 형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 약속, 이 사람 숨 거둘 때까지 지켰습니다.”
둘째 시동생의 손에서 서류가 떨어졌습니다. 조문객 사이에서 누군가 혀를 찼습니다. “형수가 갚아 준 빚을 형수한테 내놓으라는 거여?” 막내 시동생은 고개를 숙인 채 빈소 밖으로 나갔고, 둘째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습니다.
오 씨는 영정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 동생들 일, 당신 몰래 해서 미안해요.” 20년 동안 한 번도 내지 않았던 울음이 그제야 터져 나왔습니다. 딸이 다가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빈소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튿날 아침 발인 때, 두 시동생은 형의 관을 들면서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오 씨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형님 마지막 길입니다. 똑바로 모시세요.”
가족의 빚을 대신 갚아 주는 마음은 대개 조용히 묻힙니다. 그러나 숨긴 선의는 훗날 엉뚱한 의심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가족 사이의 돈일수록 영수증과 기록은 꼭 남겨 두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내 진심을 지켜 주는 마지막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혼자 짊어진 짐은 언젠가 배우자와 나누어 보시길 바랍니다. 서로의 걱정을 함께 지는 것이 부부이기 때문입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린 아침, 오 씨는 여느 때처럼 새벽 다섯 시에 김밥집 셔터를 올렸습니다. 도마 옆에는 남편이 쓰던 단무지 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시장 골목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