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8:07

“아랫집 아이 공짜로 봐줬는데..” 5년 뒤 주민센터 직원이 내민 서류에 말문이 막혔다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민 손이라 더 오래, 더 깊이 내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선의가 누군가에게는 이용하기 좋은 빈틈이 되기도 합니다.

경상도 바닷가 작은 도시의 낡은 빌라 2층에 사는 강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남편과 함께 시장 입구에서 28년 동안 세탁소를 했습니다. 남편은 6년 전 겨울 뇌졸중으로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강 씨는 가게를 정리한 뒤 얼마 안 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외아들은 수도권에서 직장에 다니며 명절에나 내려옵니다.

5년 전 봄, 아랫집에 윤 씨가 이사를 왔습니다. 서른 중반의 윤 씨는 남편과 헤어지고 다섯 살 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마트 계산대에서 저녁 교대까지 일하는 윤 씨에게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습니다.

이사 온 지 열흘쯤 지난 밤이었습니다. 계단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아이가 잠긴 현관문 앞에 혼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강 씨는 아이를 안고 올라와 밥을 먹이고 재웠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숨이 턱에 닿게 달려온 윤 씨는 문 앞에서 울먹였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맡길 데가 정말 없어서요.”

강 씨는 윤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내일부터 어린이집 끝나면 우리 집으로 보내요. 나도 혼자 밥 먹기 적적했어.” 윤 씨가 돈 이야기를 꺼내자 강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돈은 무슨 돈이야. 애 하나 더 앉는다고 밥상 무너지나.”

그날부터 아이는 매일 오후 강 씨 집으로 왔습니다. 강 씨는 아이 손을 씻기고 받아쓰기를 봐 주었습니다. 열이 나는 밤이면 물수건을 갈며 곁을 지켰습니다. 저녁마다 반찬도 두 통씩 더 만들어 아랫집 문고리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이는 강 씨가 볶은 멸치를 유난히 좋아해서 “할머니 멸치”라고 불렀습니다.

반찬값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장을 보면 한 달에 10만 원 넘게 더 들었고, 강 씨는 그 돈을 연금에서 떼어 냈습니다. 대신 낡은 겨울 내복을 한 해 더 입고, 보일러 온도를 한 칸 낮췄습니다. 세탁소 시절 단골들 옷을 다려 주며 하던 말이 버릇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서로 손 보태는 거지.”

두 해쯤 지났을 때 윤 씨가 부탁을 하나 했습니다. “할머니, 신분증 사본 한 장만 주세요. 아이 비상연락처에 할머니를 올리려는데 서류가 필요하대요.” 강 씨는 아이를 그만큼 믿고 맡겨 주는구나 싶어 흐뭇한 마음으로 내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윤 씨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주차장에 새 차가 들어섰고, 문고리에 걸어 둔 반찬통은 돌아오지 않는 날이 늘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어느새 고개만 까딱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마다 강 씨는 열 살이 된 아이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눌렀습니다.

올가을, 기초연금 재심사 결과가 담긴 우편물이 왔습니다. 월 60만 원의 돌봄 소득이 확인되어 연금액이 줄어든다는 통보였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강 씨는 우산을 받쳐 들고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번호표를 쥐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창구에 앉았습니다. 젊은 여직원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어르신, 아이돌봄 지원 쪽에서 어르신이 돌봄비를 받으신 걸로 신고가 되어 있어요. 5년째요.” 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나는 그런 돈 한 푼도 받은 적 없어요.”

직원이 서류 한 묶음을 내밀었습니다. 아이돌봄 지원 신청서였습니다. 돌봐 주는 사람 칸에 강 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매달 돌봄비를 받았다는 확인서가 붙어 있었고, 맨 아래마다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강 씨는 돋보기를 꺼내 도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강 씨의 도장은 남편이 세탁소 문을 열던 해에 직접 새겨 준 나무 도장이었습니다. 획이 삐뚤삐뚤한 그 도장과 달리, 서류의 도장은 반듯한 기계 글씨였습니다. 신청인 칸에는 윤 씨의 이름이 있었고, 지원금은 매달 윤 씨 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3년 전에 건넨 신분증 사본이 떠올랐습니다.

“이 도장은 내 것이 아니에요.” 강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직원은 사실이 확인되면 연금은 바로잡을 수 있고, 잘못 지급된 지원금은 신청인에게서 환수하는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씨는 우산도 펴지 못한 채 빗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강 씨는 아랫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문을 연 윤 씨에게 서류 사본을 내밀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이름으로 도장까지 파서.”

윤 씨는 잠시 얼굴이 굳더니 이내 팔짱을 꼈습니다. “어차피 할머니는 공짜로 봐 주셨잖아요. 돈은 제가 받아도 되는 거 아니에요?” 강 씨는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5년 동안 문고리에 걸어 둔 반찬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때 방 안에서 아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할머니 왔어?” 강 씨는 숨을 고르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도장 이리 줘.” 윤 씨는 서랍에서 작은 도장을 꺼내 말없이 건넸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들은 전화로 화를 냈습니다. “엄마, 이건 남의 도장을 몰래 판 거예요. 고소해야 해요.” 강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저 애는 어떻게 되니. 열 살짜리가 엄마 손 잡고 경찰서 드나드는 꼴은 못 본다.”

이튿날 강 씨는 주민센터에 해명서를 냈습니다. 도장을 만든 적도, 돌봄비를 받은 적도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원이 보는 앞에서 그 도장을 내놓고 폐기를 부탁했습니다. 지원금을 어떻게 돌려받을지는 기관이 정할 일이었습니다. 연금은 두 달 뒤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 강 씨는 아랫집 초인종을 다시 누르지 않았습니다. 문고리에 반찬통을 거는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계단에서 아이를 마주치면 말없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줄 뿐이었습니다.

선의는 계산하지 않을 때 가장 따뜻합니다. 하지만 내 이름과 도장, 신분증만큼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쉽게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정을 지키는 일과 나를 지키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닙니다.

정을 끊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선을 긋는 일, 그것이 오래 정을 나눠 온 사람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늦가을 어느 오후, 강 씨는 혼자 시장 골목을 지나 바닷가 방파제까지 걸었습니다. 옛 세탁소 자리에는 작은 찻집이 들어서 있었고, 골목 끝 생선 좌판에서는 햇볕에 말린 가자미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강 씨는 주머니 속 나무 도장을 가만히 쥔 채, 수평선 위로 해가 내려앉을 때까지 차가워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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