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04:25

“아들 주식 빚 7000만원 갚아줬는데..” 남편 49재 날 아들이 내민 서류 한 장에 주저앉았다

자식에게 건네는 돈은 돌려받으려고 주는 돈이 아닙니다. 다만 부모는 그 돈에 담긴 뜻만큼은 자식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 바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어떤 부모는 가장 아픈 날에야 알게 됩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 사는 정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동네 재래시장 골목 안쪽에서 30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같은 시장에서 건어물을 팔다가 쉰 중반에 허리를 다쳐 장사를 접고, 그 뒤로는 아내 가게의 배달을 맡았습니다. 부부에게는 외아들 하나뿐입니다. 아들은 마흔을 갓 넘긴 회사원으로, 아내와 초등학생 딸을 두고 있습니다.

부부에게 아들은 삶의 이유였습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던 겨울, 학원비가 모자라자 정 씨는 난생처음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대학 합격 소식이 오던 날, 남편은 시장 상인들에게 떡을 돌리며 골목을 세 바퀴나 돌았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는 전셋값에 보태라며 적금을 깼습니다. 손녀가 태어나자 정 씨는 가게 문을 일주일 닫고 며느리 산후조리를 거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엄마, 나중에 다 갚을게” 하고 웃었습니다. 정 씨는 그 말만으로도 배가 불렀습니다.

일이 터진 것은 4년 전 늦가을이었습니다. 아들이 밤늦게 가게로 찾아와 내려진 셔터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습니다. 남의 말만 믿고 빌린 돈까지 주식에 넣었다가 7000만 원이 빚으로 남았다고 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아직 말을 못 했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부부는 안방에서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냥 두면 애 앞길이 막히겠소. 우리가 막아 줍시다.” 정 씨가 물었습니다. “그 돈이면 우리 노후 돈인데 괜찮겠어요?” 남편은 천장을 보며 말했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저한테 갈 몫이오. 미리 준 셈 칩시다.”

정 씨는 25년 동안 부은 적금을 해지하고 남편 명의 보험 하나를 깼습니다. 모자란 돈은 석 달 동안 가게 수입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맞췄습니다. 돈을 건네던 날, 정 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이건 네가 나중에 받을 상속분을 미리 주는 거다. 아버지랑 그렇게 정했다. 다시는 이런 데 손대지 마라.” 아들은 고개를 숙인 채 “네, 엄마. 알아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뒤 4년이 흘렀습니다. 아들은 빚을 털고 회사를 잘 다녔지만, 발길은 점점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차례만 지내고 바로 올라가기 일쑤였습니다. 옆 생선가게 박 씨가 “아들이 요즘 통 안 보이네” 하고 물으면, 정 씨는 “회사 일이 많대요” 하고 웃어넘겼습니다.

그러던 올해 늦여름,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벽 배달을 나가려고 신발을 신다가 현관에서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49재가 있던 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산 아래 작은 절에서 재를 올리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네 시였습니다. 남편이 입던 낡은 점퍼가 아직 현관 옷걸이에 걸려 있었습니다. 정 씨가 젖은 우산을 접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먼저 돌아갔던 아들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서류 가방을 든 낯선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엄마, 이분 변호사님이에요. 잠깐 얘기 좀 해요.”

식탁에는 절에서 받아 온 떡이 보자기에 싸인 채 놓여 있었습니다. 변호사가 그 옆에 서류 몇 장을 가지런히 내려놓았습니다. 맨 위 종이에는 ‘상속재산 분할 협의 요청’이라는 글자가 굵게 찍혀 있었습니다.

“어머님, 고인 명의로 된 이 집을 법정상속분대로 정리하자는 것이 아드님 뜻입니다. 배우자분과 자녀분 지분은 3 대 2가 됩니다.”

정 씨는 아들을 쳐다봤습니다. “얘야, 오늘이 아버지 49재다. 꼭 오늘이어야 했니.”

아들은 눈을 피했습니다. “엄마 혼자 이 큰 집에 사실 것도 아니잖아요. 팔아서 엄마는 작은 데로 가시고, 저는 제 몫 받으면 서로 깔끔하잖아요.”

“4년 전 7000만 원, 그거 네 상속분 미리 준 거라고 하지 않았니. 아버지랑 그렇게 정했다고.”

아들이 피식 웃었습니다. “그건 그냥 도와주신 거잖아요. 부모가 자식 급할 때 돕는 거지, 그걸 왜 상속이랑 섞어요. 서류로 남긴 것도 없잖아요.”

그 말에 정 씨는 식탁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창밖 빗소리가 굵어졌습니다. 새벽 네 시마다 무를 썰고 멸치를 볶아 지켜 온 집이었습니다. 남편이 손수 칠한 초록 대문이 빗물에 젖어 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가 조심스레 덧붙였습니다. “생전에 받은 돈도 사정에 따라 미리 받은 몫으로 따질 수는 있습니다. 다만 다툼이 되면 입증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립니다.” 아들은 못 들은 척했습니다.

정 씨는 한참 말이 없다가 서류를 모아 변호사 쪽으로 밀었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세요. 제가 따로 알아보겠습니다.” 현관을 나서던 아들이 “오래 끌면 서로 피곤해요” 하자, 정 씨는 그 등에 대고 한마디만 했습니다.

“네 몫은 4년 전에 이미 받았다.”

다음 주, 정 씨는 가게를 반나절 닫고 법률사무소를 찾았습니다. 적금 해지 내역과 아들 계좌로 보낸 이체 기록을 챙겨 갔습니다. 남편의 상속은 절차대로 밟기로 하고, 자기 몫이 될 집 지분과 가게 보증금, 남은 예금은 공증 유언으로 정리했습니다. 자식에게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몫이 있다는 설명에 정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몫을 넘는 것은 손녀 학자금과 자신의 노후 돌봄에 쓰도록 적었습니다. 서명을 마치고 나오는 길, 정 씨는 오랜만에 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부모의 돈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습니다. 주는 쪽은 뜻을 담아 건네도, 받는 쪽은 지나간 일로 여기기 쉽습니다. 사랑으로 건넨 돈일수록 말로 한 약속 대신 글로 남겨 두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정리해 둘 것을 정리하는 일은 정을 끊는 일이 아닙니다. 남은 정마저 다치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겨울 문턱에 들어선 요즘도 정 씨는 새벽 네 시면 시장 골목으로 나섭니다. 가게 앞 연탄난로 위에서 시래기 된장국이 끓고, 박 씨가 김 오르는 종이컵을 건넵니다. 정 씨는 셔터를 올리며 남편이 즐겨 먹던 무말랭이를 한 접시 따로 담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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