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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이에 오가는 정은 따로 장부에 적어 두지 않습니다. 한 그릇 더 끓인 국을 나누고 반찬 한 가지를 더 덜어 건네는 일은 주는 사람도 금세 잊곤 합니다. 그러나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작은 그릇 하나가 오래도록 남아 있기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소도시, 오래된 단층 주택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에 사는 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한 씨는 서른 해 넘게 안방에 재봉틀을 놓고 삯바느질을 했습니다. 바짓단을 줄이고 교복 품을 늘렸고, 명절이면 한복 고름을 새로 달았습니다. 남편은 평생 타일 기술자로 남의 집 욕실과 부엌을 고쳤습니다. 딸과 아들은 서울에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열여덟 해 전 봄,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 안주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식구는 공사장에 다니던 정 씨와 열두 살 누나, 여덟 살 막내였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 씨는 술에 기대기 시작했습니다. 밤늦게 골목에서 비틀거리는 정 씨의 발소리가 들리면 한 씨는 재봉틀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씨는 담 너머로 옆집 막내를 보았습니다. 아이는 마루 끝에 앉아 맨밥에 물을 말아 먹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그 옆에서 동생 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 주고 있었습니다. 한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한 씨는 저녁마다 반찬을 한 가지씩 더 만들었습니다. 연두색 플라스틱 반찬통에 멸치볶음과 계란말이, 장조림을 담았습니다. 반찬통은 비닐봉지에 넣어 옆집 대문 문고리에 걸어 두었습니다. 초인종은 누르지 않았습니다. 엄마 잃은 아이들이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느라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처음에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여보, 남의 집 일에 너무 나서는 거 아니오? 정 씨가 알면 자존심 상할 텐데.” 한 씨는 바늘에 실을 꿰며 대답했습니다. “애들 밥 굶는 건 남의 집 일이 아니에요. 바느질 삯에서 반찬값 조금 덜어 내면 돼요.” 그 뒤로 남편은 한 씨가 장 보러 갈 때마다 말없이 장바구니를 들어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면 깨끗이 씻은 빈 반찬통이 한 씨 집 문고리에 걸려 있었습니다. 가끔은 통 안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잘 먹었습니다’라고 쓴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겨울에 막내가 열이 올라 끙끙 앓던 밤에는 누나가 한 씨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씨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업고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누나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얻어 온 헌 교복을 밤새 줄여 입혔습니다.
그렇게 다섯 해 동안 반찬통은 담 하나를 넘어 매일 오갔습니다. 누나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정 씨는 다른 지방 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며 이사를 갔습니다. 떠나는 날 정 씨는 한 씨 앞에서 모자를 벗고 고개만 깊이 숙였습니다. 몇 해 동안은 명절마다 안부 문자가 왔지만, 어느새 그마저 끊겼습니다.
한 씨는 가끔 옆집 쪽 담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정 씨는 술은 끊었을까. 아이들은 밥은 잘 먹고 다닐까.’ 서운하다기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사 가던 날 돌아오지 않은 반찬통이 하나 있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올가을, 남편이 일하던 현장에서 쓰러졌습니다. 뇌출혈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사흘을 버티던 남편은 끝내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장례식장 밖에는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딸과 아들은 서울에서 급히 내려와 상복을 입었습니다.
첫날 저녁, 낯선 남녀가 빈소에 들어섰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삼십 대 여자와 그보다 조금 어린 남자가 영정 앞에 두 번 절을 했습니다. 여자가 한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줌마, 저예요. 옆집 누나요. 얘가 막내고요.” 한 씨는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에서 열두 살, 여덟 살 아이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남매는 그날부터 사흘 동안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간호사가 된 누나는 휴가를 냈고, 학교 급식실 조리사가 된 막내는 일을 미루고 왔습니다. 두 사람은 조문객을 맞고 음식을 날랐으며, 밤이면 빈소 한쪽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조문객들은 남매를 상주 식구로 여겼습니다. 한 씨의 딸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습니다. “엄마, 저분들 누구예요?” 한 씨는 “옛날 옆집 아이들이다” 하고만 대답했습니다.
발인 날 아침,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습니다. 운구차가 오기 전 막내가 한 씨 앞에 와서 보자기 하나를 풀었습니다. 안에서 낡은 연두색 플라스틱 반찬통이 나왔습니다. 뚜껑은 누렇게 바랬고 모서리에는 금이 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 씨는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열여덟 해 전의 그 반찬통이었습니다.
뚜껑을 여니 멸치볶음과 계란말이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위에 접힌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첫 줄에는 ‘아줌마 반찬통 이제야 돌려드려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막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빠져 계실 때, 저녁마다 문고리에 걸린 이 통 하나 보고 버텼어요. 오늘은 반찬이 뭘까, 그 생각으로 학교에서 집에 왔어요. 이사 가던 날 누나가 이것만은 못 돌려드리겠다고 몰래 짐에 넣었어요.” 누나가 말을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술을 끊으셨어요. 이 통을 볼 때마다 아줌마한테 부끄럽다고요. 이번에도 꼭 가 보라고 하셨어요. 몸이 안 좋아 못 오신 걸 죄송하다고 전해 달래요.”
편지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멸치볶음은 제가 급식실에서 아이들한테 해 주는 거예요. 아줌마 맛을 흉내 내서 만들었어요. 이번에는 저희가 문고리에 걸어 둘게요.’ 한 씨는 반찬통을 가슴에 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깨만 들썩였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일주일이 지난 저녁, 한 씨 집 대문 문고리에 비닐봉지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연두색 반찬통이었습니다. 그 뒤로 남매는 번갈아 가며 매주 같은 반찬통에 반찬을 채워 왔습니다. 한 씨는 빈 통을 깨끗이 씻어 다시 문고리에 걸었고, 그 안에 ‘잘 먹었다’라고 쓴 쪽지를 넣었습니다.
옛말에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했습니다. 크고 대단한 도움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같은 시각에 걸려 있던 반찬통 하나가 어떤 아이에게는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웃의 형편이 눈에 밟힌다면 거창하게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용히 한 그릇을 건네 보세요. 그렇게 건넨 정은 잊힌 듯해도, 언젠가 가장 필요한 날 내 문 앞에 돌아와 걸려 있습니다.
첫눈이 내린 날 아침, 한 씨는 남매와 함께 남편이 잠든 산자락 묘지에 올랐습니다. 소나무 가지마다 흰 눈이 소복이 얹혔고, 멀리 골목 지붕들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세 사람은 연두색 반찬통에 담아 온 계란말이를 묘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해가 높이 뜰 때까지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