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6 08:21

“옆집 남매에게 저녁밥 차려 줬는데..” 9년 뒤 그 남매가 내민 낡은 공책에 펑펑 울었다

밥 한 끼 값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려 준 사람은 금세 잊고, 얻어먹은 사람도 그때뿐이려니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밥상은 한 아이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떠받치기도 합니다.

황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 오래된 시장 골목 어귀에서 27년째 분식집을 해 왔습니다. 탁자 네 개짜리 가게에서 떡볶이와 김밥, 어묵, 계란말이를 팔았습니다. 남편은 화물차를 몰다 몇 해 전 일을 놓고 가게 일을 거들었고,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객지에서 살림을 꾸리고 있습니다.

13년 전 봄, 가게 옆 낡은 2층 셋집에 정 씨네가 이사를 왔습니다. 아내를 병으로 먼저 보낸 정 씨는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느라 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집에는 초등학교 4학년 누나와 1학년 남동생, 남매만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비 오는 저녁, 가게를 닫으려던 황 씨는 셋집 계단에 쪼그려 앉은 남매를 보았습니다. 누나는 컵라면 하나를 들고 있었고, 동생은 누나 팔에 기대 졸고 있었습니다.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하노?” 누나가 작게 대답했습니다.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아빠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요.”

황 씨는 남매를 가게로 데려와 남은 떡볶이 국물에 밥을 비벼 주었습니다. 계란말이도 한 줄 썰어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누나는 제 몫의 계란말이를 슬그머니 동생 접시로 밀어 주고는 밥만 떠먹었습니다. 황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황 씨는 학교 끝날 무렵이면 골목에 나가 남매를 불러들였습니다. 숙제는 구석 탁자에서 하게 하고, 저녁은 따로 밥을 지어 국과 반찬을 차렸습니다. 계란말이는 언제나 두 개씩 부쳤습니다. 하나는 누나 몫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운동회 날에는 새벽에 나와 남매 몫 김밥을 따로 쌌습니다.

한 달쯤 지나 정 씨가 쭈뼛거리며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손에는 구겨진 지폐 몇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애들 밥값이라도 받으이소. 염치가 없어서 못 살겠습니더.” 황 씨는 그 손을 도로 밀었습니다. “밥솥에 밥 한 주걱 더 퍼는 데 돈 안 듭니다. 그 돈으로 애들 운동화나 사 주이소.”

사실 돈이 안 드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장사 끝물에 남은 재료로는 모자라 반찬거리를 따로 샀고, 가게 수입에서 다달이 적지 않은 돈이 나갔습니다. 남편은 처음에 “남의 집 애들까지 우리가 우째 다 책임지노” 하고 혀를 찼습니다. 그러면서도 몇 달 뒤에는 동생 받아쓰기 숙제를 봐 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누나가 중학교 2학년, 동생이 5학년이 되던 해 정 씨는 수도권의 한 공장에 자리를 얻어 이사를 갔습니다. 떠나던 날 누나는 가게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였고, 동생은 황 씨 앞치마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명절마다 정 씨의 안부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소식이 끊겼습니다. 황 씨는 가끔 구석 탁자를 닦다가 손을 멈추었습니다. “잘 커서 우리 같은 건 잊어버렸는갑다. 그래도 밥 굶지 말고 살면 됐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아내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그사이 황 씨의 무릎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습니다. 하루 열 시간 넘게 철판 앞에 서 있던 세월이 고스란히 무릎에 쌓인 것입니다. 올봄 정형외과 의사는 연골이 많이 닳았다며 오래 서서 하는 일은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황 씨는 여름 내내 고민하다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영업일은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시장 골목 바닥은 아직 촉촉했고, 가게 유리문에는 남편이 붓펜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27년 동안 고마웠습니다.’ 단골들이 하루 종일 드나들며 떡볶이를 사 가고 황 씨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황 씨가 철판 불을 줄이는데 문에 달린 방울이 울렸습니다. 스물 남짓한 청년과 단정한 차림의 젊은 여자가 서 있었습니다. 청년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주머니, 저희 기억하세요? 옆집 살던 남매요.”

황 씨는 국자를 든 채 그대로 굳었습니다. 훌쩍 자란 누나가 가방에서 공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모서리가 닳고 표지가 누렇게 바랜 초등학생용 공책이었습니다. “가게 문 닫는다는 얘기를 옛날 동네 친구한테 들었어요. 이거 꼭 보여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공책을 펼치자 삐뚤빼뚤한 연필 글씨가 빼곡했습니다. ‘3월 14일 비. 아줌마가 계란말이 두 개 줬다. 하나는 내 거라고 했다.’ ‘5월 2일. 오늘은 미역국. 동생이 두 그릇 먹었다.’ ‘10월 7일 운동회. 아줌마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날짜마다 그날 먹은 저녁 메뉴가 한 줄도 빠짐없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가 없으니까 밥 먹은 걸 적어 두라고 아빠가 그랬어요. 굶은 날이 있으면 꼭 말하라고요. 그런데 4년 동안 한 번도 굶은 날이 없었어요.” 누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황 씨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을 넘겼습니다. 중학생이 된 누나의 또박또박한 글씨였습니다. ‘우리를 굶기지 않은 엄마. 옆집 아줌마.’

그때 동생이 가방에서 하얀 조리복을 꺼내 입고 앞치마를 둘렀습니다. “저 조리 특성화고 나와서 조리사 자격증 땄어요. 지금은 한식당 주방에서 일해요. 아주머니가 해 주신 밥 먹고 이만큼 컸어요. 오늘 마지막 손님상은 제가 차릴게요. 아주머니가 손님 하세요.”

청년은 황 씨를 구석 탁자, 남매가 숙제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황 씨의 철판 앞에 서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계란을 풀었습니다. 떡볶이 한 접시와 미역국 한 그릇, 노랗게 부친 계란말이 두 개가 상에 올랐습니다.

“하나는 아주머니 거예요.” 그 한마디에 황 씨는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얼굴을 감싼 채 펑펑 울었습니다. 누나가 다가와 황 씨를 끌어안았고, 주방 쪽에 서 있던 남편도 돌아서서 눈가를 훔쳤습니다. 가게에 남아 있던 단골 몇 사람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누나는 공책을 황 씨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아빠도 오고 싶어 했는데 허리를 다쳐서 못 왔어요. 그동안 연락 못 드린 건 형편이 어려워 볼 낯이 없어서 그랬대요. 이제는 저희가 자주 올게요.” 황 씨는 공책을 가슴에 꼭 안은 채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정은 대개 베푼 사람의 기억에서 먼저 지워집니다. 하지만 받은 쪽에서는 그것이 날짜와 반찬까지 또렷한 한 줄 한 줄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지금 곁에 끼니를 거르는 아이가 있다면 밥 한 그릇 더 퍼 주는 일을 망설이지 마십시오. 그 밥은 생각보다 오래, 생각보다 멀리 갑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이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 늦음까지 너그럽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깔린 11월 초, 황 씨는 남편과 함께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셔터 내린 분식집 앞을 지나는 황 씨의 장바구니에는 다음 주에 놀러 오겠다는 남매를 위해 산 계란 한 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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